'우리'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의외로 다양한 의미를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대목은 '어떤 대상이 자기와 친밀한 관계임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을 꼽을 수 있다.

가깝지 않은, 친밀하지 않은 사이에선 결코 쓰일 수 없는 단어인 '우리'를 최우선 가치에 두고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은행이 있다. 바로 익산에 위치한 우리신협이 그 주인공이다.

우리신협이 위치한 익산시는 백제의 숨결을 간직한 작은 소도시다. 하지만 작금의 익산은 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인해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시기에 이르러서 산업은 물론 금융계도 어려운 상황을 마주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신협은 다른 타 신협의 멘토 조합으로 건실하게 성장하면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남을 돕는 조합은 아니었다. 도움의 손길을 내밀게 된 것은 불과 몇년 되지 않았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우리신협이 마주해야 했던 것은 '암흑'같은 시련이었다.

1970년 6월 14일, 마동에서 시작했다 해서 '마동신협'으로 태동을 알린 우리신협은 조합원 31명, 자산 10,433원을 바탕으로 창립됐다. 2년 후 재무부 장관의 인가를 받고 열심히 신협의 가치를 알리며 금융산업을 키워온 결과 20년 만인 1992년 자산 100억 원을 조성해냈다.

하지만 이들도 피해가지 못한 시련이 있었다. 전국을 패닉상태로 몰고 간 IMF 금융위기는 마동신협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었다. 결국 2002년 6월, 경영난을 겪고 있던 또 다른 신협인 모현신협과 합병에 이르게 됐다.

두 신협이 하나가 되는 만큼 새로운 이름이 필요했다. 윗선에서 적당히 정해서 명명할 수도 있었지만 그런 전근대적인 방법 대신 조합의 근원인 조합원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다양한 의견이 수렴된 끝에 결정된 이름은 '우리신협'이었다. '우리'라는 단어 자체가 함께, 더불어 한다는 의미인데 신협의 의미와도 일맥상통했고 그 어디서도 쓰인 적 없던 이름이라 단번에 결정됐다.

이름을 바꾼다고 해서 상황이 반전되는 일은 없었다. 여전히 금융위기의 덫에서 나오는 데 시간이 걸렸으며, 상황은 쉽사리 나아지지 않았다. 이미 금융위기 전인 1993년부터 경영난으로 인해 직원들을 구조조정 해야 했으며 수년째 월급은 오르지 못하고 꽁꽁 얼어붙어야 했다.   

IMF 금융위기 당시 결손금은 40억을 넘어섰다. 오르지 않는 월급, 보이지 않는 미래는 헌신적이었던 직원들을 지치게 했다. 직원들의 퇴사는 도미노처럼 와르르 이어졌다. 그 시기를 견뎌냈던 이동기 전무는 그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저리다고 했다.

이 전무는 재무상태 조합으로 20년을 이어왔던 우리신협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는 오랫동안 조합원으로, 평이사로 우리신협과 함께 했던 김한주 이사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2010년, 단돈 1원이라도 벌어내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여전히 결손금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지만 일단 이익을 내고 그 이익으로 직원들을 독려하는 것이 장기적인 발전에 도움이 되리라 믿었다.
갈등도 심했다. 자산이 100억 원씩 빠져나갈 땐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것 같아 직원 모두가 허탈해 한 적도 있었다고. 하지만 이익을 내야 한다는 것에 방점을 찍은 이상 멈출 수 없었다. 직원들도 급여가 동결되는 상황에서도 회사의 경영지침을 적극적으로 따라줬다.

그 결과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신협중앙회 경영평가에서 5년 연속 경영우수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경영이익을 기치로 내걸었던 2010년 한 해에만 햇살론(저신용, 저소득자 대상 대출)실적평가에서 전국 3위에 들면서 중앙회장 표창도 거머쥐었다. 이후에도 경영최우수상, 경영성과 6관왕 등 받을 수 있는 모든 경영관련 상을 휩쓸었다.

그 모든 기록의 중심엔 배당금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해도 꾸준히 관심과 사랑을 기울여준 조합원들이 있었다. 이 전무는 "우리신협이 일어설 수 있었던 데엔 조합원들의 지지와 사랑이 가장 큰 힘이 됐다"며 "신협의 근본 원칙을 잃지 않고,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일을 통해 그간 기다려준 조합원들에게 받은 만큼 돌려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는 중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신협은 40억 원에 이르던 결손금을 모두 회수하는 단계에 이르렀고 내년즈음엔 조합원들에게 '선물'처럼 배당금을 나눌 수 있는 첫 해를 맞이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20년 이상 우리신협을 위해 헌신한 이명미 상임이사 역시 조합원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이 상임이사는 "우리신협의 진정한 가치는 결국 '사람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려운 시기에 늘 함께 해주신 창립·충성 조합원들이 계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며 "재무환경이 나아지는대로 받은 사랑을 갚아나가려 한 만큼 앞으로 조합원들과 지역민을 위해 더욱 헌신하는 우리신협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노령층 거주율이 높은 익산시 영등동에 위치한 우리신협은 어르신들을 위해 사랑방을 만들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도 하고 김 이사장이 직접 연주를 하고 함께 즐기는 노래교실을 상시 운영하고 있다. 특히, 최근 코로나19로 극심한 어려움에 빠진 익산 소상공인들을 위해 적극적인 경영컨설팅을 지원하는 한편, '소상공인 어부바' 캠페인을 통해 조합에서 직접 구매한 마스크, 손소독제, 항균물티슈를

지역 소상공인들에게 나누며 상생하는 길을 열고 있다.
조합을 찾는 고객들을 위해 언제나 밝은 미소로 접객하는 것은 물론, 자산대비 예대율이 85%에 이르는 적극적인 여신업무에도 불구하고 연체율은 타 은행의 반절에도 못미치는 우수한 재정관리 등을 통해 조합원의 소중한 자산을 든든히 지키고 있는 우리신협은 이제 더 큰 꿈을 이루기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다.

조합원들에게, 그리고 지역민들에게 어떤 신협으로 남고 싶냐는 마지막 질문에 김한주 이사장은 '신협의 숙명'을 지켜나가는 신협이고 싶다고 답했다. "가난에서 국민들을 구제하고 복지사회건설을 위해 노력해 온 신협의 정신을 우리신협이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더불어 함께 살아야 진정한 '우리'가 아닐까요."
어려운 위기를 강단있게 이겨내고 언제나 따뜻한 미소로 고객을 맞이하는 우리신협이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오래도록 이어질 수 있도록 이제는 지역민들의 따뜻한 시선이 동행해야 할 차례다. /홍민희기자·minihong2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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