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악은 공동체의 구심점
지난 해 말,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 제9차 무형유산위원회는 우리나라  농악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은 우리의 ‘농악(農樂)’을 그 이름에서 드러난 것과 같이, 다만 음악적 가치의 측면만 본 것이 아니다.
농악은 우리 삶에서 다양한 형태와 목적으로 공연되어 왔으며, 이를 통해 공연자와 참가자들에게 동공체의 정체성을 부여해 왔다. 음악뿐만 아니라, 춤과 놀이를 포함하는 종합공연예술로서 오랜 동안 우리 민중과 가장 가깝게 있으면서 ‘공동체의 구심적 역할’을 해 온 것이다.

신명을 이끄는 농악놀이
조용한 시골마을이나 도회지나 할 것 없이 농악이 울려 퍼지면, 그 공간은 커다란 파도 위에 올라 탄듯 일순간에 크게 일렁이고 흥분의 도가니에 빠지게 된다. 연행자는 말할 것이 없고,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신명이 넘쳤던가.
어릴 때, 내 또래 아이들은 모두 그러했으리라. 농악대가 울긋불긋 삼색드림으로 몸을 치장하고, 가슴을 고동치게 만드는 금속 ‘쇠’와 가죽 ‘북’의 절묘한 하모니는 천상천하를 가득 아우르는 꽉 찬 소리의 향연이었다.
일사분란하게 다양한 진을 치고 푸는 ‘진놀음’이며, 꿩털로 치장하고 하늘로 치솟아 당당히 서 있는 농기와 설명기, 흡사 엄숙한 군영을 연상케하는 영기이며 나발이며, 상쇠의 화려한 상모는 부풀대로 부풀어 오른 위엄으로 살랑살랑 여유 있게 돌아가며 진열을 지휘하고 있었다.
‘뒷잽이’들은 각종 재밌는 분장과 익살로 흥미를 자아냈고, 참여하는 모든 이들은 일상의 고단함을 잠시 벗어나 모처럼 한가로운 여유를 만끽했다.
가장 탄성을 자아내는 대목은 역시 구정놀이라고도 불리는 개인놀음이다. 쇠꾼들, 장구잽이들, 북잽이들, 소고잽이들, 열두발 상모까지 차례로 갖가지 재주를 다 발휘하는데 혼이 쏙 빠질 지경인데다, 화려한 ‘채상모 놀음’과 ‘연풍대’, 그리고 재주를 아홉 번을 넘네 열두번을 넘네 말도 많았던 ‘자반뒤지기’는 관객들이 함께 그 숫자를 합창으로 셀 지경이었다.
이렇듯 농악은 다만 농사짓는 일에 쓰이는 음악의 기능만 한게 아니다. 세밑이나 정월 대보름, 백중놀음, 동네 울력과 두레, 공동자금 모금, 축원, 연희 등다양한 용도로 쓰이며 우리 민족의 기층음악으로서 가장 친근하고 절대적인 존재로 군림해왔다. 

농악의 분포와 명칭
농악은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약하고,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쎄다. 다시 말해, 농업이 발달하고, 특히 논농사가 발달한 지역일수록 농악이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남쪽에서도 서남쪽, 즉 호남지역의 농악이 가장 풍성하고 구성지다.
농악을 전통적으로는 ‘매구’ ‘풍물’ ‘풍장’ ‘걸궁’ ‘걸립’ 등으로 불렀으며, 농악을 치는 것을 ‘굿친다’ ‘금고(金鼓)친다’ ‘매구친다’ ‘풍장친다’ ‘쇠친다’ 라고 불렀다. 진안에서는, 특별히 풍장칠 때 치는 쇠를 ‘풍년쇠’하고 부르기도 했는데, 일반적으로 농악기는 ‘굿물’ ‘풍물’ ‘기물’ 등으로 불렀다.
종교적으로는 ‘굿’ ‘매굿’ ‘지신밟기’ ‘마당밟기’의 명칭으로, 노동예능으로 볼 때는 ‘두레’라 불렸고, 풍악이나 풍류로 해석할 때는 ‘풍장’이라고 표현했다. 또한, 일부에서는 농악의 기원을 군악으로 보아 ‘군고(軍鼓)’라 부르기도 한다.
농악의 유형은 그 발생 순서와 형태로 보아, ‘축원농악’ ‘노작농악’ ‘걸립농악’ ‘연희농악’으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남원에서 시작하여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성농악’은 포장을 치고 입장료를 받으며 공연했을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이를 통해, 일종의 ‘연예농악’의 형태로까지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지역별로는 ‘경기충청농악’ ‘영동농악’ ‘영남농악’ ‘호남좌도농악’ ‘호남우도농악’으로 구분하는데, 경기충청농악은 ‘웃다리농악’, 그에 반해 호남과 영남농악은 ‘아랫다리농악'이라고도 부른다.

농업의 중심, 전라북도
농악은 농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우리나라는 농경사회였으며, 그 중심은 전라도 지역이다. 특히, 전북의 서쪽, 김제 만경은 강을 끼고 형성된 비옥하고 드넓은 충적 평야를 자랑했고, 임순남(임실,순창,남원)의 동남부산간 분지지역마저도 따듯한 햇빛과 충분한 강수량으로 인해 만석군이 적잖이 배출되었다. 
마한의 기풍제와 추수감사제에 관한 기록, 김제의 벽골제 유적 등은 모두 이 지역이 농경사회의 중심이 되었음을 말해 준다. 오죽하면, 왜적들이 가까운 경상도를 놔두고 멀리 서해까지 와서 노략질을 일삼다가, 고려말 금강하구에서 최무선의 대포(진포대첩)에 당하고, 남원까지 쫓겨나다 결국 이성계한테 궤멸(황산대첩)을 당할 지경에 이르렀을까.

전북농악의 분류
전라도 농악은 두 종류로 구분된다. 전라도의 서쪽에 위치한, 주로 평야지대에서 발전해 온 농악을 ‘전라우도농악’ 혹은 ‘호남우도농악’이라고 부른다. 이에 반해, 전라도의 동쪽에 위치한, 주로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발전한 농악을 ‘전라좌도농악’ 혹은 ‘호남좌도농악’이라 부른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전라도 농악의 뿌리는 모두 전라북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한과 백제는 물론, 조선시대에도 전라도의 중심은 전북과 전주였다.
호남우도농악은 익산, 부안, 김제, 고창, 정읍, 군산, 장성, 영광, 나주, 광주, 함평, 무안, 목포, 영암, 장흥 등지에서 전승되어 왔다. 그 중에서도 우도농악을 끌고, 그 중심의 역할을 해온 지역은 단연 정읍과 고창이다. 
호남좌도농악은 진안, 무주, 장수, 임실, 남원, 순창, 곡성, 구례, 화순, 광양, 순천, 보성, 승주 등지에서 전승되어 왔다. 그 중에서도 좌도농악의 중심은 단연 임실과 남원으로 보는데 무리가 없다.
판소리와 마찬가지로, 농악 역시 우리 지역과 우리 지역의 뛰어난 음악적 위인들의 활약으로 인해, 오늘날 세계무형유산으로 인정받고 그 위상을 세계 속에 드높일 수 있었다는 것은 크게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농악대의 편정과 복색
농악대는 ‘앞치배’와 ‘뒷치배’로 나뉜다. 앞치배는 ‘농기’ ‘영기’ ‘날라리’(새납 혹은 태평소), 그리고 쇠, 징, 장구, 북의 ‘사물’(四物)을 이른다. 뒷치배는 ‘소고’(법고)와 다양한 ‘잡색’을 이른다. 앞치배는 주로 연주를 담당하고, 뒷치배는 춤이나 연극적인 놀이를 담당한다.   
상쇠는 전체 연행을 이끄는 역할로서 옷이나 장식품도 가장 화려하다. 머리에는 부포상모를 쓰고, 흰바지 저고리 위에 반소매의 창옷(홍동지기)을 입는데, 소매 끝을 오색동이로 치장하기도 하고, 등에는 궁글게 반짝이는 원형의 쇠붙이(거울)를 붙여 지위와 위엄을 드러내기도 한다. 또한 다른 치배들과 같이 화려한 삼색띠(색드림, 화복)를 어깨와 허리에 감지만, 거울을 붙일 때는 등에 붙여 아래로 늘어뜨리기도 한다.   
상모에는 채상모와 부포상모가 있다. 채상모는 전립 꼭대기 물채에 이어서 길다랗게 한지종이를 달아맨 것이다. 부포상모는 물채 끝에 부포(꽃상모)를 다는 것으로, 좌도농악에서는 물채 끝이 부드러운 노끈으로 된 ‘부들상모’(일명, 개꼬리상모), 우도농악에서는 물채 끌에 철사를 넣어 뻣뻣하게 곧추 새울 수 있는 ‘뻣상모’를 쓴다. 좌도농악의 경우 대개 쇠꾼은 부포상모(부들상모)를 쓰고, 나머지 치배들은 채상모를 쓴다. 우도농악의 경우 대개 쇠꾼만 부포상모(뻣상모)를 쓰고, 나머지 치배들은 고깔을 쓴다.

악기의 구분과 좌우도농악의 특징
쇠는 암쇠과 숫쇠로 구분한다. 숫쇠는 작아서 고음과 금속성 소리가 강하며, 암쇠는 크고 저음의 부드러운 소리를 낸다. 상쇠는 숫쇠를 치는 것이 상례이다. 장구는 열채로 두드리는 채편이 통이 작고 얊은 가죽을 사용하여 높은 소리인 숫소리를 내며, 궁채로 두드리는 궁편은 원통이 크고 두꺼운 가죽을 사용하여 낮은 소리인 암소리를 낸다.
역시 징에도 암징과 숫징이 있으며, 북은 대북, 중북, 소북으로 나뉘었으나, 호남지방의 북은 좀 작고, 영남지방의 북은 좀 크다. 전라북도에서는 북놀음이 약화되고 장구놀음이 강화된 반면, 영남과 전라남도에는 아직도 북놀음이 성행한다. 대개 외북채로 치나, 전라남도 진도와 경상도 금릉 그리고 김해 지방의 농악에서는 쌍북채 놀음을 한다.
좌도농악은 전원 상모를 써서 ‘윗놀음’(부포놀음)이 화려하나 상대적으로 ‘밑놀음’(굿가락 연주)은 담백한 편이며, 가락이 빠르고 소박하며 단체연기에 치중하고 빠른 몸놀림을 특징으로 한다. 우도농악은 고깔을 주로 써서 윗놀음보다 밑놀음이 발달했으며, 느린 가락이 많아 치밀하고 다채로운 변주를 주로 하고,  개인놀음이 발달했으며 느린 춤사위를 특징으로 한다. 호남우도농악에서 뻣상모가 개발된 후로는 개인놀음에서 상쇠의 상모놀음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농악의 미래
농악은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됨으로써, 보다 체계적인 전승과 창조적 발전을 도모할 수 있게 되었다. 더군다나, 농악은 이제 실제 농사짓는 현장을 떠나 단일한 공연물로서도 대단히 발전된 예술음악으로, 또한 관객을 아우르는 공동체문화예술로 거듭나고 있다. 또한 사물놀이와 같이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새로운 장르로 거듭나기도 했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의 농악은 세계 인류문화발전의 중요한 매개로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미 전주세계소리축제와 같은 현장에서 월드뮤직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음을 증명하였으며, 오늘날 우리나라 음악계의 다양한 영역에서 창작음악, 퓨전 그리고 크로스오버의 영역 등에서 그 존재감이 갈수록 넓게 혹은 깊게 과시되고 있다.
앞으로도 농악의 신명과 공동체의 구심적 특성이 적극 활용되어, 세계 속의 다양한 공간과 상황에서 우리의 농악이 더 크게 울려퍼질 것을 기대한다.

유장영(전북도립국악원 예술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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