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은 지리적으로 원예작물 재배가 힘든 곳이다.
해안지역의 특성상 토양에 염분이 많이 포함돼 있는 데다 점토질 땅이 많아 배수가 불량하다. 또 눈이 많이 내리고 안개가 끼는 날이 많아 일조량도 적다. 작물 재배에 필수적인 물도 좋지 않다.
때문에 그동안 군산지역에서는 벼 농사 이외에 이렇다할만한 원예작물 재배가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군산에서도 브로콜리와 가지 등 몇몇 원예작물을 재배해 성공하는 사례가 발견되고 있다.
현재 군산지역에서는 옥산면을 중심으로 12개 농가가 4.5ha에서 시설가지를 재배, 연간 50억원대의 조수익을 거두고 있다.
옥산면의 한 시설하우스에서 가지농사를 짓고 있는 김종배(65)․최정옥(60)씨 부부를 만나 여러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가지농사에 성공한 비결을 들어봤다.

■ 한전 명퇴 이후 가지농사 뛰어들어
가지는 보라색을 내는 ‘안토시아닌’ 성분이 많아 항암, 항산화 효과가 뛰어난 채소로 알려져 있다. 칼륨이 풍부해 이뇨작용을 돕고, 피로회복에도 좋다. 또 식이섬유가 많아 변비를 예방함은 물론 다이어트에도 효과가 있다.
이같은 기능성이 알려지면서 웰빙식품으로 가지를 꾸준히 찾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의 국민 1인당 가지 소비량은 일본의 10분의 1 수준에 그치고 있다.
또한 가지는 재배에만 성공하면 매년 큰 파동없이 상당한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작목이다.
전라북도 농업기술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가지는 수년째 땅에 재배하는 작목 가운데 농가소득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시설재배 물량과 노지재배 물량이 동시에 출하되는 5~6월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높은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최근에는 출하가격이 1박스에 2만4,000원을 넘어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하량이 줄고 있어 4월까지는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반면 잔일이 많고 재배법이 어려워 많은 농가들이 재배를 꺼리는 작목이기도 하다.
김씨 부부도 겁 없이 가지농사에 뛰어들었다가 첫해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전력에서 32년동안 근무하다 1988년 명예퇴직으로 회사를 그만둔 김씨는 퇴직후 10년 동안 이것저것 손을 댔다가 퇴직금만 축내고 말았다.
그러다 한 지인의 소개로 가지 시설재배 현장을 둘러본 뒤, 전격 가지농사에 뛰어들었다. 농사 경험이라고는 한전 재직시절 변전소 유휴부지를 이용해 고추, 들깨, 상추, 부추 등을 재배해본 경험이 고작이었던 김씨로서는 큰 결단이었다.
김씨는 1999년 9월 옥산면 쌍봉리에 있는 지금의 가지 시설하우스를 인수했다. 이미 정식이 돼 있는 상태였고, 적당히 비료주고 농약주다 수확만 하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끊임없이 반복되는 잔일과 곰팡이병, 여기에 필요한 일손을 제때 구하지 못해 수확시기를 놓치는 등 생각지도 못한 어려움이 뒤따랐다.
몸무게가 11kg이 빠질 정도로 열심히 일했지만 결산을 해 보니 소득은 한푼도 없었다. 두사람의 인건비는 고사하고 적자를 안본게 다행일 정도였다.

■ 농업기술 익혀 귀농 2년차부터 수익 전환
한해 농사를 경험한 아내는 당장 포기하자고 성화였다. 살이 빠져 홀쭉해진 그를 보고 주변사람들도 “계속 농사지으면 사람 죽겠다”며 그만두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인 김씨는 ‘죽기살기’의 심정으로 다시한번 도전에 나섰다. 아내에게는 앞으로 5년 내에 생활비를 제외하고 2억원을 현금으로 주겠다고 약속했다.
농촌진흥청을 비롯해, 전라북도농업기술원, 군산시 농업기술센터 등을 찾아 농업기술을 배우고, 전문가들로부터 수시로 자문을 받았다.
결과는 대성공. 두 번째 해부터는 거칠 것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돈도 모아졌다. 아내에게 5년동안 2억원을 만들어준다고 했으나 3년만에 이미 1억7,000만원을 모았다.
시설투자에도 상당한 공을 들였다.
부족한 용수공급을 위해 대형 물탱크와 관수관비시스템(물과 영양분을 공급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갑작스런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일조량을 높이기 위해 투광성이 좋고 내구성이 긴 비닐로 교체했다.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고 작물의 품질을 높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위기도 있었다.
작년 8월, 가지 정식을 마친 상태에서 6일만에 폭우가 쏟아졌다. 2011년에도 폭우가 몰아쳐 침수사태가 있었으나 당시는 7월이어서 가지를 정식하기 전이었다.
막 정식을 마친 하우스를 둘러보고 밤 9시쯤 집에 들어갔는데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했다. 걱정스런 마음에 밤 11시쯤 아파트를 나와 다시 하우스까지 오는 10여분 동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쏟아졌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때 군산지역에는 불과 3시간만에 300mm가 넘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결국 새벽 2시경 하우스 안으로 빗물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후 1주일동안 갓 정식해놓은 가지 묘목이 물에 잠겨 있었다. 한해 농사를 이렇게 망치는가 싶었다. 군산시농업기술센터 직원들까지 총 동원돼 1주일만에 물을 다 빼내고 보니 심란했다. 병해충 방제와 항생제 투입 등 긴급조치를 실시한 결과 기적적으로 대부분의 묘목을 건질 수 있었다. 1,750개의 묘목 가운데 15개만 죽었을 뿐이었다.
이같은 위기를 견딘 덕분에 김씨는 작년 한해동안 9,000만원 가까운 소득을 올릴 수 있었다.

■ ‘끝장 보겠다’ 각오로 덤비면 직장생활보다 낫다
4년차에 접어들면서 김씨는 가지농사에 관한 한 이제 전문가 수준을 능가하고 있다. 품종에 맞는 재배법도 터득했다.
김씨가 재배하는 품종은 ‘파슬리스’라는 유럽계 품종이지만 국내에서는 ‘팽팽이’로 더 알려져 있다.
비결은 끊임없는 연구와 함께 농사를 시작하면서부터 매일 써 왔던 ‘농사일지’에 있다. ‘농사일지’에는 그날그날의 농작업 내용은 물론, 새로 배운 농업지식, 병해충 발생 여부, 가지의 시세, 심지어는 하우스 방문객에 이르기까지 상세한 내용들을 꼼꼼히 기록하고 있다.
‘농사일지’를 떠들어보면 과거 병해충 발생시기, 시장가격 등을 미리 예상할 수 있어 예측가능한 농사에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 김씨의 설명이다.
김씨는 귀농에 대한 문의를 받거나 고민을 들으면 “적성에만 맞다면 시작하라”고 권한다. 대신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겠다’는 각오와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각에서 우려하고 있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서도 크게 우려할 일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1억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중국내 부유층을 중심으로 고급농산물에 대한 소비가 오히려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이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씨는 “직장생활을 30년 넘게 했지만 요즘만큼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면서 “적성에 맞고, 끝까지 하겠다는 각오만 돼 있다면 농사에 인생을 걸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문관기자․mk7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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