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노신(魯迅)

20세기 중국 문학의 거장 노신은 길이란 것은 본래 없었던 것이지만 사람이 많이 다니면서 그것이 곧 길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노신은 희망을 길과 같다고 표현했다.
길을 뜻하는 대표적인 한자어에는 ‘도(道)’와 ‘로(路)’가 있다. 두 글자를 합쳐 ‘도로’라고 쓰지만 엄밀히 따져 ‘도’와 ‘로’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로’자가 발족(⾜)변에 <길, 거쳐 가는 길, 겪는 일, 크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비해, ‘도’는 훨씬 쓰임의 범위가 넓고 크다. ‘도’는 <이치, 근원, 기능, 방법, 사상, 인의(仁義), 덕행(德行), 기예, 정령(政令), 행정(行程), 바둑․장기에서 行馬의 길, 통하다> 등 광의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노신이 말하는 길은 이같은 의미보다도 한발 더 나아간 희망에까지 이르고 있다.
길에 대한 인문학적 해석을 차치하고라도 길은 그 자체만으로도 수많은 역사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처음 길이 만들어진 과정은 사람이 내왕할 필요를 느껴 많이 오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걷는 길이었겠지만, 문명의 발달 단계에 따라 인류는 수많은 길을 만들어냈다.
원시시대 생존을 위해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길은 바퀴가 발명되면서 마차가 통행할 수 있는 제법 넓은 길로, 또 자동차가 발명된 뒤에는 속도를 낼 수 있는 넓고 평탄한 도로로 점점 진화됐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철도를 비롯해 고속도로, 국도, 지방도, 자전거길 등 기능과 목적에 따라 다양한 길이 조성됐다. 최근에는 산책길, 오솔길, 마실길, 둘레길, 순례길, 경관길(도로) 등 걷거나 주변 경관을 감상할 목적으로 하는 수많은 길들이 생겨나고 있다. 또한 육상의 길 뿐 아니라 배들이 다니는 바닷길, 비행기가 오가는 하늘길도 일정한 규칙을 정해 오가도록 하고 있으니 이것도 분명 길은 길이다. 심지어 인간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정자가 요도를 거쳐야 엄마의 자궁에 착상할 수 있고, 죽을 때조차 저승길로 간다고 하니 어찌보면 ‘길이 아닌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같은 길이라도 누구에게나 다 같은 길은 아니다. 한적한 시골길을 오가면서도 주변 경관을 느긋하게 즐기며 유람을 즐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포승에 묶여 언제 돌아올지 기약조차 할 수 없는 유배길을 가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똑같은 등산로지만 단순히 등산을 위해 가는 사람과 누군가를 장사지내기 위해 피눈물을 흘리며 가는 사람, 생계를 위해 약초나 산나물을 뜯으러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밤과 낮, 겨울과 여름, 맑은 날과 눈 쌓인 날 등 시점에 따라서도 제각각이다. 같은 길이지만 누가, 언제, 어떻게, 어떤 목적으로, 왜 가는지 등에 따라 그 길은 소풍길이 되기도 하고, 유배길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길을 찾는다는 것은 곧 떠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길을 떠나는 것, 그것은 곧 여행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한 곳에 정착해서 살지만 역설적이게도 끝없이 여행을 추구한다. 농업혁명이 인간을 정착하게 만들었다면 산업혁명은 인간을 떠돌이로 만들었다. 짧은 여행이든, 긴 여행이든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 하고, 그것을 동경한다. 산업혁명의 결과물인 기차의 발명은 그러한 동경을 더욱 구체화시켜준 것에 다름 아니다.
때문에 길은 나를 세상과 연결시켜주는 통로이자 매개체이다. 길을 통해 세상과 관계를 맺고, 소통하고, 삶의 목적을 추구한다.
셀 수도 없이 많은 길! 과연 어느 길이 나에게 맞는,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일까?
<전라일보>가 2012년 특별기획으로 ‘전북의 길’을 찾아 나선다.
국도와 지방도, 마실길, 둘레길, 순례길 등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도내 길들을 직접 돌아보며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되짚어볼 예정이다. 때로는 자동차로, 때로는 걸어서 여러 길들을 직접 체험하며, 일대의 자연생태와 역사적 이야기들을 지면에 담아볼 계획이다.
옥정호 주변의 아름다운 길부터 일제 수탈의 역사를 간직한 옛 전군도로, 모래재 터널이 개통되면서 쭉쭉 뻗은 메타세쿼이아들이 정겨운 옛 진안가는 길, 동학농민군들이 의기를 드높이던 옛 전적지들도 돌아볼 예정이다.
전북의 아름다움과 역사를 찾아 떠나는 새로운 길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을 바란다.
/소문관기자․mk7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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