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공유공간planC 종료전 ‘모두가 아는 도둑질:공간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당신은 무엇을 훔치고 싶은가.
8년 6개월간 품었던 이야기 속 스스로의 마지막을 묻는 전시를 마련했다.
사용자공유공간 planC는 활동을 종료하는 과정으로 두 번째 기획전 ‘모두가 아는 도둑질:공간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를 12월 5일까지 연다.
100년 된 일식가옥을 개조해 운영돼 온 독립예술공간 planC. 그동안 163개의 프로젝트와 수많은 퍼포먼스, 실험 전시들을 진행했다.
전시의 기획을 맡은 독립큐레이터그룹 CLab은 “공간이 사라지는 순간을 단순한 종결이 아닌 새로운 출발의 전환점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그 질문을 구현한 방식이 바로 ‘도둑질’이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 37팀은 사전 예약을 통해 공간에 들어온 뒤, planC 일부를 ‘훔쳐’ 작업의 재료로 삼는다. 금고에 든 귀중품이 아니라, 창문틀 한 조각, 오래 단단하게 붙어 있던 벽 마감재, 낡은 조명, 커튼, 심지어 소리와 냄새, 시간의 기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잔여까지 전부 포함된다.
원칙은 두 가지. ‘한 번만 들어올 것’, ‘단 하나만 훔칠 것(단위는 종류가 아니라 개수)’, 그 한몫을 챙긴 뒤에야 작가는 비로소 작업을 시작한다. 완성된 작품은 다시 전시장으로 돌아와 전시장의 곳곳에 선착순으로 설치된다.
전시는 익숙한 제작 방식을 통째로 뒤집는다.
작품이 전시장으로 들어오는 오랜 관습 대신, 전시장에서 작품이 만들어지는 흐름을 택했다. 공간이 무엇으로 이뤄졌는지, 예술이 ‘장소’와 어떻게 공유하는지를 작가의 손과 몸으로 다시 묻는 실험이다.
전시 중에는 포럼도 마련된다. 3일 오후 4시에는 ‘불완전한 이상이 실현될 때 어떤 공동체가 형성되는가’가 마련된다. planC 운영자 이산의 기조 발제를 시작으로, 생태적지혜연구소협동조합 이승준 이사장, 연결기획자 톨, 예술사회학연구자 김신윤주가 참여한다.
포럼은 ‘이상’을 향해 나아가다가 필연적으로 맞닥뜨리는 불완전성, 그 속에서 탄생하는 공동체의 얼굴을 질문한다.
전북문화관광재단 ‘2025 우수기획전시 지원사업’ 선정작이기도 한 이번 종료전은 지역 예술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실험하는 성격이 강하다. CLab은 전시를 통해 단지 하나의 공간 폐쇄를 기록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역 예술의 새로운 거점과 집단적 기획 방식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독립큐레이터그룹 CLab 관계자는 “단순히 전시공간으로서만 공간을 대하는 것이 아닌 지역예술계의 거점에 대한 질문을 병행한다”라며 “지역 내의 예술 생태계들에 대한 다양한 질문들이 촉발되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