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현주소
‘지방자치단체는 법령의 범위 내에서 그 자치에 관한 행정사무와 국가가 위임한 행정사무를 처리하며 재산을 관리한다. 지방자치단체는 법령의 범위 내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
1948년7월17일 제헌국회에서 제정된 제헌헌법 제8장 제96조다. 그리고 제97조에는 지방자치단체의 조직과 운영, 지방 의회 설치 등을 규정했다. 이것이 우리나라 지방자치제의 시작이다. 1949년 지방자치법이 공포되고 1952년에는 지방의원 선거가 실시됐다. 1960년 자치단체장 선거로 면모를 갖췄다.
그러나 5.16 이후 지방자치는 자취를 감췄다. 그 명맥이 되살아 난 때는 1988년 민주화물결이 넘실거리던 시기였다. 그리고 1991년 지방의원 선거가 실시됨으로써 공식적으로 풀뿌리 민주주의 지방자치는 부활됐다. 1995년6월27일 실시된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로 이 땅에 완전한 지방자치제가 뿌리를 내렸다.
이후 30년이 지났다. 이 길다면 긴 시간을 거친 오늘날의 지방자치는 어떤 모습일까.
안타깝게도 기대 이하다. 전문가들은 ‘서른 어른, 어릴 적 옷 입은 격’이라고 표현했다. 중앙정치에의 예속성은 가장 큰 문제다. 또 자치재정·분권 수준도 지역 자율성을 보장할 수준에 턱없이 못 미친다. 낮은 지방 재정자립도나 국세·지방세 비율이 대표적이다.
그렇다고 30년을 허송한 것은 아니다. 나름 지역의 자립의지와 힘이 강화됐다는 평가다. 이와 관련해 행정안전부가 내놓은 성과는 4가지다. 지방선거와 지방의회, 주민투표소환 등으로 주민 참여가 확대된 점과 정보공개청구 활성화가 진전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지자체 사회복지예산 확대나 행정서비스 강화로 삶의 질이 높아졌다. 지역특화발전도 정부가 내세운 성과다.
행정안전부가 민선 지방자치 30주년을 맞아 지난 8월 주민과 전문가 및 시도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지방자치제도 인식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조사 결과 지방자치 필요성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답변한 전문가는 83%, 주민은 62%였다. 그러나 ‘지방자치성과 평가’ 항목에서는 긍정적이라고 답한 비율이 주민은 36%에 그쳤고, 전문가는 50%, 공무원은 53%였다. 행안부는 이에 대해 “제도적 성과와 주민 체감 성과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그간의 성과가 제도적 분권에 치중된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이는 오늘의 지방자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결과다. 제도는 어느 정도 갖췄는지 몰라도 성과는 지방자치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주민들의 인식이다. ‘무늬만 지방자치’라는 생각인 것이다. 또 무관심에 따른 참여의식도 희박하다. 무엇보다 지방재정력 강화가 급한 숙제다. 돈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자치라는 말이 무의미하다. 서울·경기·세종을 제외하고 재정자립도가 50%를 하회한다니 우선 이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지방분권형 개헌도 진지하게 논의할 시점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