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지 라면 흑역사
가축 중에서도 소만큼 모든 부위가 이용되는 경우도 없을 것이다. 고기는 물론 가죽에서부터 내장, 뼈까지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다. 그중에서도 우지 그러니까 소기름도 꽤 쓸모가 많다. 우선 소의 비계를 가공해 탤로(tallow)를 만든다. 이는 식용으로 쓰인다. 또 소기름 그 자체로도 정제를 통해 일반 씨앗기름과 마찬가지 용도로 활용된다. 그뿐 아니다. 식용 외에도 비누나 세제 등의 공업용 원료로도 사용되고 있다. 화장품이나 자동차 연료로까지 가능하다.
그런데 이 우지가 인체에 해롭다는 연구가 나오면서 식용으로 쓰이는 경우가 확 줄었다. 과거엔 정육점에서 얻어다 육개장 등 음식 만들기에도 활용됐지만 지금은 무슨 독을 보는 듯 꺼려한다. 이는 우지의 포화지방산이 심혈관계에 아주 나쁜 작용을 한다는 통념에서다. 소기름이 혈관에 잔뜩 달라붙어 각종 질병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얻은 악의적인 별칭이 ‘혈관 폭파범’이다.
그렇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오리나 닭 등 모든 동물성 기름이 모두 포화지방을 함유한데다 인체로 들어가면 이들 지방이 모두 녹는다는 것이다. 동물성 지방이 직접 혈관을 막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또 지방은 인체에 반드시 필요한 영양소다. 세포를 보호하고 호르몬과 신경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풍부한 지방은 뇌나 근육형성에도 유리하다.
우리나라에서 우지와 관련된 유명한 흑역사가 있다. 바로 라면업계 1위를 달리던 삼양식품을 강타한 우지파동이다. 1989년 익명의 투서가 검찰에 날아들었다. 삼양식품이 라면을 만들면서 공업용 우지를 쓴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검찰은 삼양식품 등 5개 업체를 적발하고 사법처리했다. 하지만 후일 보건사회부는 무해하다는 판정을 내렸고, 해당 업체는 반발했지만 한번 떨어진 신뢰는 회복되지 못했다. 나중에 대법원 무죄판결도 나왔다. 결국 삼양식품은 파산 직전까지 갔고 그 뒤로도 농심에게 선두를 빼앗긴 채 고전해야 했다.
삼양식품은 최근 ‘삼양1963’ 라면 출시를 발표했다. 이는 삼양식품이 36년만에 선보이는 우지 라면이다. 또 삼양식품 최초의 프리미엄 라면이라고 회사 측은 밝혔다. 우지와 팜유를 황금비율로 혼합해 면을 튀겼다는 점을 내세웠다. 1989년 우지파동 이후에는 모든 라면은 팜유로만 튀겨왔다. 회사 측은 “내부에서 언젠가는 우리가 다시 한 번 우지라면을 만들어야겠다는 열망이 있었고, 이제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해 자신감이 커져서 이 제품을 출시하게 됐다”고 밝혔다.
지금도 우지는 세계 각국에서 논란의 대상이다. 건강에 해롭다는 주장과 오히려 식물성 씨앗 기름보다 낫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선 상태다. 미국의 경우 케네디 보건사회복지 장관이 우지를 적극 옹호하면서 이를 쓰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가는 추세다. 요컨대 우지는 절대 선도 그렇다고 절대 악도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건강하게 잘 먹으면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다. 삼양식품의 새 라면에 대한 소비자 반응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