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의 해월리

2025-11-12     전라일보
/강길선 교수 전북대학교 고분자나노공학과 

강길선  전북대학교 고분자나노공학과 교수 

무심한 것이 세월이라고 하였던가! 세상이 어떻게 되건 시간은 하염없이 흐른다. 해월리 다리목마을도 그렇다. 그 뜨겁고 가물었던 여름도 언제 그랬냐는 듯 까맣게 잊어버릴 정도로 후딱 지나갔다. 

지난여름의 해월리는 오골계·토종닭 병아리와의 씨름이었다. 각 병아리 백 마리씩을 친구가 주었다. 부화된 다음 날 직접 가져온 병아리는 정말로 예뻤다. 처음에는 방의 마룻바닥에서 키웠다. 곧 외부에 판넬로 조그맣게 짓고 바닥에 내 전기장판을 깔고 히터로 30℃를 맞추어서 오골계는 거의 다 살렸다. 

그런데 약 2개월 후에 토종닭 병아리 100마리를 가져왔을 때는 쥐가 출몰하여 각 40~50여 마리가 희생이 되고, 후에 계속 없어지는 것 같아서 자세히 살펴보니 야생 매가 지속적으로 잡아가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오골계는 커가면서 수컷들이 암컷을 워낙에 못 살게 굴어서 계속 수컷 오골계를 잡고 있다. 알도 본격적으로 낳기 시작하는데 일반 닭보다 반밖에 낳지 않는다. 계란의 크기도 작다. 

거위는 6월에 세 달 정도 된 것을 김제에서 세 마리를 사 가지고 왔는데 이제는 부쩍 커서 닭 집 주위의 경계를 단단히 하고 있다. 특히 매가 나타나면 세 마리가 일제히 울어대어 우리 집 파수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역시 똑똑하다. 청공작새는 깃털을 가느라 화려한 자태는 없지만 그래도 하루에도 몇 차례씩 꽁지를 펴서 없는 멋을 힘껏 자랑한다. 

바나나 두 그루를 사다가 화분에 심었는데 날이 갑자기 추어져 한 그루가 심한 동상을 입었다. 방 안에 들여놓았는데 살았으면 좋겠다. 미물이라도 같이 5~6개월을 살다 보니 정이 들었다. 

9월 초에 늦게 심은 김장 배추·무는 비교적 잘 크고 있다. 참깨 대를 베고 난 자리의 멀칭한 곳에 배추 모종 세 판 약 360 포기를 심었는데 약 320 포기가 잘 자라고 있다. 배추속이 더디게 드는 것 같으나 어떻게 하겠나? 늦게 심은 것을! 농사는 이 때맞추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본격적으로 추워지면 뽑아서 창고 내에 담요로 싸서 보관하면 겨우내 닭·오리·공작들에게 먹일 수 있다. 

비닐하우스 내에는 알타리를 심어서 송 교수님댁과 우리 집에서 푸짐하게 알타리 김치를 담아 먹었다. 맛이 그만이다. 양배추·비트·콜라비는 처음에 농약을 제때 주지 않아서 결국 실패하였다. 농약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딜레마이다. 올해는 가지 4개와 고추 5개를 심었는데 정말로 원 껏 따먹었다. 가지는 건강식품이다. 많이 먹을수록 좋다고 한다. 

여주도 5개 심어 덩굴을 비닐하우스 지지대에 올렸는데 익기 전에 바로 따다가 건조기로 말려서 분말을 만들어 놓았다. 겨울에 음료수에 타 먹을 예정이다. 여주는 식물 인슐린이라 불릴 정도로 혈당 조절에 탁월하다. 감나무는 해거리를 하고 달지 않아서 올봄에 포크레인을 불러 주위를 깊이 파고 퇴비를 엄청 주었다. 해거리는 없어진 것 같은데 맛이 나아진 지는 아직 모르겠다. 대추나무 두 그루도 어김없이 많이 열었으나 이도 소독을 전혀 하지 않아 벌레가 많다. 꾸지뽕도 마찬가지이다. 댓개 우선 따먹어봤더니 달기가 그지없다. 맛이 좋다. 전혀 소독하지 않아 그냥 먹기가 찝찝하다. 어쨌거나 수확하여 냉동보관 후에 음료수에 같이 갈아 먹으면 노화 지연에 좋다고 한다. 

올해 해월리에서 가장 서운한 것이 들깨이다. 실수한 것이 4년째 연작을 한 것이다. 올해는 들깨에 심는 것을 피하고 다른 작물을 심었어야 하는데 실수를 했다. 게다가 날씨까지 가물어서 작년에 20%도 안 나왔다. 들깨 경작에 들어간 돈은 150여만 원이 넘으나 소출은 2~30만원밖에 안 되니 이보다도 더 허망한 일이 어디 있겠나? 

그래도 그 자리에 로타리치고 퇴비를 많이 넣어 양파와 마늘을 또 심었다. 시골에는 돈이 되는 작물이 없으니 근심이다. 들어간 돈이야 그렇다고 치지만 노력과 들어간 땀과 품이 그래도 땅을 놀릴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 농민들의 딜레마일 것이다. 이제 입동이 지났으니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될 것이다. 월동 작물과 닭·거위·공작들과 함께 다가오는 추위를 견디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