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조작된 경험의 시대, ‘좋아요’가 민심이 될 때
지방선거를 앞두고 취재 현장을 뛰다 보면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을 새가 없다. 포털 뉴스, 유튜브 추천 영상, 지역 커뮤니티의 ‘핫한’ 게시물들이 쉴 새 없이 알림을 울린다.
며칠 전, 한 후보를 다룬 자극적인 제목을 보고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클릭조차 하기 전이었다. 알고리즘은 이미 내가 선거에 관심이 있음을 알고, 내가 좋아할 만한(혹은 분노할 만한) 정보를 정교하게 밀어 넣고 있었다.
그 순간 섬뜩했다. 매일같이 ‘사실 확인’을 외치는 기자마저 이럴진대, 일반 유권자는 어떨까.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직접 보고 듣고 판단하기보다 ‘추천된 경험’에 의존하고 있다. 위험 대신 통제된 결과를, 우연한 발견보다 검색 결과를, 불편한 진실보다 익숙한 확신을 선택한다.
스마트폰 화면 속 세상은 더 이상 현실을 비추는 창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재단한 ‘맞춤형 세계’로 바뀌어가고 있다. 이 맞춤형 세계는 지방선거에서 특히 위력을 발휘한다. 중앙 정치보다 좁은 인적 관계망 속에서 ‘카더라 통신’은 검증의 속도를 가볍게 추월한다.
지역 커뮤니티에 올라온 익명 글 하나, 자극적으로 편집된 사진 한 장이 후보의 이미지를 규정하고, ‘좋아요’ 수가 여론의 척도로 둔갑한다. 기자가 아무리 팩트체크 기사를 내보내도,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유권자의 화면에 도달조차 하지 못한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누군가의 거대한 조작이 아니라, 우리의 무의식적 편의와 선택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느린 확인보다 빠른 전달을 택하고, 정보의 신뢰를 클릭 수로 판단한다. 그렇게 ‘편의’가 사고를 대신하고, ‘속도’가 판단을 지배한다. 기술은 어느새 민주주의의 토대인 ‘판단력’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새로운 시민의식이다. 민주주의는 기술의 진보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깨어 있는 시민의 습관으로 유지된다. ‘내가 보는 정보가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최소한의 의심, ‘이 뉴스의 출처는 어디인가’라는 한 번의 확인, ‘내가 공유하려는 글이 사실인가’라는 자정의 질문. 그것이 알고리즘 시대의 시민 교양이다.
스마트폰 화면 너머로 흘러드는 정보의 바다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생각하는 인간으로 남아야 한다. 진짜 판단은 손가락이 아니라 머리에서 시작된다. ‘좋아요’가 민심이 되는 순간, 민주주의는 더 이상 우리 손에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