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의 미래, 교토(2)

2025-11-10     전라일보
김동열 박사 서울대 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

김동열 박사   서울대 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

   100년 후 전주는 교토 같았으면 좋겠다. 지난 글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열 명이나 배출한 교토大를 따라잡아야 하는 전북 대학들의 미션을 언급했다면, 이번에는 교토를 대표하는 기업들의 면면과 특징을 살펴보려 한다. 전주처럼 보수적인 도시 교토에 전주와 달리 혁신적인 기업이 많은 이유는 뭘까?

  교토의 기업은 다르다. 그 다름을 교토大의 스에마쓰 교수(2002)는 ‘교토식 경영’이라 불렀고, 인천大의 양준호 교수(2008)는 일본 기업과 다른 ‘교토 기업’이라고 명명했다. 계열기업과의 수직적 거래나 사업 다각화로 알려진 일본의 대기업들과 달리 교토 기업은 국내외 기업과의 수평적 거래와 전문화로써 구별 지워진다. 하나의 사업 아이템, 특정 소재와 부품에 천착하여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히든 챔피언’이 많다.

  한 우물을 깊이 파는 교토 기업은 뿌리 깊은 나무와 같아서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1875년에 창업한 터줏대감 시마즈제작소는 일개 주임연구원이 노벨화학상을 받아 유명해졌지만, 실은 의료기기와 분석기기 분야의 숨은 강자다. 아울러, 컴퓨터 등의 소형 정밀모터 1인자 일본전산, 세라믹 전자부품으로 유명한 교세라, 화투에서 시작해 ‘슈퍼 마리오’로 유명해진 닌텐도, 콘덴서 강자 니치콘, ‘재미있고 즐겁게(fun & joy)’가 사훈인 배기가스 측정기 최고기업 호리바제작소, 세계적인 속옷 브랜드 와코루(Wacoal) 등이 교토를 대표하는 기업들이다.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경영자 3인 중 한 사람이자 ‘경영의 神’으로 불린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과 ‘아메바 경영’으로 널리 알려진 교세라를 조금 더 알아보자. 규슈섬 서남단의 가고시마大 공학부를 졸업하고 교토의 절연체 제조업체에 들어간 이나모리는 당시로서는 최첨단이었던 ‘파인 세라믹’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1959년 회사 동료들과 함께 분사(spin off)하여 파인 세라믹 소재에 기반한 전자부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2025년 현재 항공기, 자동차, 전자, 의료기기, 배터리 관련 부품을 만들어서 연간 2조 엔(약 20조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전북에 본사를 둔 제조업체 가운데 매출액이 큰 순서대로 일곱 개 기업을 꼽으면 동우화인켐, 하림, 타타대우, 전주페이퍼, 참프레, 세아씨엠, 미원스페셜티케미칼 등이다. 전북의 일곱 개 회사의 매출을 합친 것보다 교토의 한 회사(교세라)의 매출이 세 배 이상이다. 

  이나모리 회장은 ‘일과 인생의 성과=사고방식×열정(노력)×능력’이라는 방정식을 제시하기도 했다. 마음가짐과 불굴의 의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노력이 남다른 성과를 올리는 데 중요하다는 점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뭔가 더 있다. 

  교세라의 성공에 기여한 숨은 요소들 가운데 하나는 교토大 도서관이다. 이나모리 가즈오의 첫 직장 쇼후공업은 월급도 제때 못 주는 기업이었다. 그 열악한 환경에서 첨단 세라믹 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교토大 도서관에 비치된 미국의 첨단 과학기술 잡지 덕분이었다. 전주와 전북의 기업에게 대학과 연구소가 중요한 이유를 보여준다.

  기술이 기초체력이라면 자금은 산소와 혈액이다. 1959년 미야기 전기의 전무였던 니시에다 이치에는 친구로부터 소개받은 스물 일곱 청년 창업자의 비전과 기술, 열정에 반했다. 창업자금의 투자는 물론 집을 담보로 한 운영자금까지 제공해줬다. 고민이 있을 때마다 찾아오는 이나모리의 얘기를 들어주고 경륜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을 해줬다. 벌써 1950년대의 교토에는 혁신적인 기술창업의 생태계가 보이지 않게 작동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건 교세라 특유의 경영철학이다. 개인과 회사의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고, 이타(利他)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이나모리 가즈오는 18세기 중반의 상인이자 철학자였던 이시다 바이간(石田梅巖)을 존경한다고 했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3백여 년 전에 “상인도 배워야 한다, 사농공상의 도(道)는 다르지 않다, 상인의 이익은 무사의 봉록과 마찬가지로 정당하다, 판매자-구매자의 윈윈(win-win) 거래가 중요하다”는 상인도(商人道)를 문답 형식으로 정리하여 당시 10쇄를 찍었다고 알려진 ‘도비문답(都鄙問答, 1739년)’의 저자다.

  전주의 기업들이 교세라 같은 교토의 기업들로부터 배워야 할 점은 한둘이 아니다. 임직원과 공동체의 공감과 존경을 끌어낼 수 있는 기업윤리와 경영철학, 다각화가 아닌 전문화, 한발 앞선 기술력, 창업 초기부터 세계시장을 염두에 둔 비즈니스 모델, 개방적•창의적인 기업문화, 이타주의와 사회적 책임 강조 등이다. 전주나 전북에 있는 기업으로서, 국내외에서 유명하진 않아도 그 분야에서만큼은 기술력과 경쟁력이 있는 기업이고, 일-가정 양립이 가능하고, ESG 경영을 실천하여 직원들이 회사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있다면 규모가 작더라도 우수 인력을 뽑을 수 있다. 

  하지만, 교토 기업의 성공 요인들을 갖추라고 기업과 CEO에게만 요구할 수는 없다. 대학과 연구소, 자치단체의 역할도 중요하다. 보수적인 교토시가 어떻게 혁신적인 도시로 변했는지, 전주와 전북의 정책, 제도, 인프라는 얼마나 기업친화적인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