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능행차 복원

2025-11-10     전라일보
수원 도착한 정조대왕 능행차 행렬

조선조 왕의 행차 중 가장 유명한 장면을 들자면 정조대왕 때 원행을묘정리의궤에 기록된 것이라고 할 만하다. 정조대왕은 해마다 1월 혹은 2월에 신하들을 거느리고 현륭원을 참배했다. 현륭원은 수원 호산 아래에 조성된 것으로 자신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묘다. 효성이 지극했던 정조대왕은 모두 13차례나 현륭원으로 행차했다. ‘원행을묘정리의궤1795(정조19) 29일부터 16일까지(음력) 거행된 수원 화성 능행차를 의궤로 정리한 것이다.

능행차의 8일간 일정은 빠듯했다. 한강을 건너 시흥에서 1박한 뒤 다음날 화성 행궁에 도착했다. 이후 13일에는 봉수당에서 어머니 회갑 잔치를 했고 14일에는 백성들에게 친히 쌀을 하사하기도 했다. 이어 서민 노인 374명을 초청해 양로 잔치를 벌였다. 환궁 도중인 16일에는 시흥에서 노인들을 만나 그들의 고통을 듣고 환곡 일체를 탕감하는 조치를 내렸다.

정조 대왕은 환궁 후 의궤의 머리에 행사의 내용을 묘사한 도설을 제작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능행차 1년후인 1796년 화원 김홍도를 비롯해 이인문, 김득신, 최득현 등이 참여해 8폭의 능행도를 완성했다.

여기에 묘사된 능행차는 장관이었다. 참여 인원만 6천여명이 넘었는데 그림에는 이중 17백여명이 등장한다. 내용도 풍부하다. 모두 8폭의 능행도에는 정조 대왕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와 두 누이 등 가족들이 등장한다. 또 문무백관과 무관, 나인까지 여러 계층의 인물들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또 현륭원 참배나 어머니 회갑 잔치, 양로 잔치, 한강 도강 장면, 특별 과거시험 실시 등이 장인들의 세련된 솜씨로 기록돼 있다. 특히 배다리를 이용한 장엄하고 화려한 한강 도강 장면은 오늘날 시각으로 봐도 장관이라고 할밖에 없다.

경기도 의회가 지난달 경기도 정조대왕 능행차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입법예고했다. 조례안은 정조대왕 능행차 재현행사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계승하고 행정·재정적 지원 근거를 마련한다는 취지에서 발의됐다. 현재 재현행사는 일부 지자체 간 자발적인 협의로 추진되고 있는데 경기도 차원의 지원체계는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도의회는 또 별도의 조례를 제정해 정조대왕 능행차 재현행사의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시책 수립 등 도지사 책무부터 유관기관 간 협의체 구성, 예산 지원 근거 등을 규정할 계획이다.

원행을묘정리의궤는 조선 후기사회의 모습을 오롯이 담고 있는 대단히 가치가 높은 문화재다. 그리고 이를 재현하는 행사 역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오를만한 대형 이벤트다. 따라서 지자체 행사로 그칠 일이 아니다. 물론 현재 재현행사는 국내 13개 지자체가 참여하는 국내 최대 퍼레이드다. 그렇지만 단순히 기념행사로 그쳐서는 안 된다. 정부 역시 이 행사를 통해 우리나라 효와 위민정치 상징이자 국가 정체성 확립 차원의 주요 문화유산으로 키워야 한다. 그리고 이를 해외에도 널리 알려 K-컬처의 격을 다시 한번 드높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