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일' 명맥 위기
‘갓 쓰고 망신한다’
점잔을 빼던 중에 뜻하지 않은 망신을 당했을 때를 속담에서 이렇게 표현한다.
조선시대 양반의 복식 중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갓이다. 갓은 가느다란 대나무나 말총으로 만들어지는 관모(冠帽) 즉 일종의 모자다. 상투를 보호하는 목적이었다. 머리를 덮는 부분인 총모자 혹은 대우와 얼굴을 가리는 차양 부분인 양태로 이뤄진다. 양태가 넓으면 양반이고 좁으면 중인이다. 우리가 보통 갓이라고 여기는 것은 갓의 여러 가지 형태 중 흑립(黑笠)이다. 또 갓에는 갓끈이 달려 있어 갓을 고정했다. 갓끈은 신분에 따라 모양이나 재료를 달리했다. 호박이나 옥으로 만들어진 갓끈을 맸다면 지체가 높은 양반이라고 보면 된다.
갓은 아무나 쓸 수 있는 모자가 아니었다. 우선 19세기에 이르면 갓은 중인 이상의 신분에다 기혼자만이 쓸 수 있었다. 특히 사대부들은 이 갓을 제 몸 이상으로 중요시했다. 주로 외출용으로 사용했는데 부러지지 않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갓싸개로 감싸기도 하고 비가 올 때는 갓 위에 또 종이로 만든 갈모를 쓰기도 했다. 집에서는 갓집을 마련해두고 이 안에 고이 간직했다. 어쨌든 조선시대 양반은 갓을 자신의 분신쯤으로 생각한 듯하다.
이 갓을 만드는 작업을 갓일이라고 한다. 갓일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먼저 양태와 총모자 제작, 입자(笠子) 과정이 그것이다. 입자란 개별적으로 만든 양태와 총모자를 결합하는 과정이다. 이 세 가지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장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갓 만드는 일이 생각 밖으로 어렵고 복잡해서 전문가들의 손길이 필요했던 것이다. 재료도 각양각색이거니와 솜씨의 수준도 달라서 여기서 아주 다양하고 독특한 형태의 갓들이 탄생했다.
우리나라 갓이 전승 단절 위기에 놓였다는 보도다. 국가유산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갓일 보유자는 전국적으로 4명에 불과하며 경기·제주에 2명씩 거주한다. 그런데 기술 보유자의 고령화 등으로 인해 전승취약종목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83세나 되는데 적당한 후계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갓일을 익히는 데는 무려 10년 이상이나 걸리는 실정이다. 국가무형유산인 갓 장인의 맥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 전체 무형유산으로 보자면 갓을 포함해 25개 종목이 전승취약종목이라고 한다.
갓은 구한말 대원군 집권 시절 개혁정책에 따라 점차 자취를 감췄다. 또 대중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졌다. 그런데 한류가 널리 유행하면서 갓에 대한 서양인들의 관심이 급격하게 높아졌다. 최근 ‘케데헌’의 인기에 편승해 갓은 다시 한번 우리 문화의 상징이 됐다. 케데헌 캐릭터들이 썼던 갓과 검은 도포가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마당에 갓 장인이 사라진다니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조형미나 정제미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갓이 정작 우리나라에서 사라진다면? 안 될 말이다. 관련 정책이나 예산을 대대적으로 확충해서 갓일의 명맥이 유지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