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보다 뜨거운 진심, 김제지평선축제의 이름 없는 주인공들
벽골제 들녘 위로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었다.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 땀방울이 금세 셔츠를 적셨지만,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제27회 김제지평선축제는 연휴와 폭염 속에서도 오히려 더 큰 열기로 들끓었다. 이번엔 기자의 명찰을 벗었다. ‘취재원’이 아닌 ‘참여자’로, ‘기록자’가 아닌 ‘시민’으로서 축제장을 찾았다. 가족과 함께 매일같이 벽골제를 오가며 느낀 건, 기사로는 다 담지 못했던 ‘김제의 얼굴’이었다. 싸리콩이 캐릭터를 본 아이들은 환하게 웃었고, 체험 부스마다 긴 줄이 늘어섰지만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았다. 땡볕 아래에서도 “괜찮아요, 기다릴게요”라며 서로에게 미소를 건네는 사람들. 그 웃음 속에는 함께 즐기는 축제의 여유가 있었다.
그 중심에는 시민과 공무원들이 있었다. 벽골제 현장은 생각보다 훨씬 넓었고, 그만큼 더위는 가혹했다. 하지만 행정과 시민 모두가 ‘이 축제를 꼭 성공시키자’는 한마음으로 움직였다. 기자는 축제 준비 과정을 취재하며 담당 공무원들을 여러 번 만났다. “올해는 예산이 작년보다 줄어서요.” “그래도 시민들이 만족할 수 있게 만들어야죠.” 한 공무원은 잠시 숨을 고르며 그렇게 말했다. 그 얼굴에는 부담감과 책임감이 동시에 묻어 있었다. 축제는 화려해 보이지만, 그 뒤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싸움’이 있다. 한정된 예산 속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살리고, 어떤 부분을 줄일지 결정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기자는 그 고민을 현장에서 직접 들으며 함께 숙연해졌다.
그들의 노력이 빛난 대표적인 예가 시민 명소로 자리 잡은 ‘단야의 꽃밭’이다. 담당자는 “예산이 충분하진 않지만, 시민들이 걸음을 멈추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실제로 꽃밭 앞에서는 가족 단위 관람객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었다. “너무 예쁘다.” 그 짧은 한마디가 고된 준비 과정을 위로하는 듯했다. 부족한 재원을 ‘진심’으로 채운 결과였다. 올해 축제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눈에 띄지 않는 ‘작은 배려’들이었다. 한 시민은 “화장실이 정말 깨끗해서 놀랐다”고 말했다. 수만 명이 다녀가는 야외행사에서 위생은 가장 관리하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이번 축제에서는 악취도, 불편함도 없었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손이 닿아 있는 행정의 세심함이 느껴졌고, 이런 작은 만족이 오히려 축제 전체의 인상을 바꿔놓았다.
시민들은 곳곳에서 그 노력을 체감하고 있었다. “작년에 비해 훨씬 좋아졌어요.” “아이들이 이렇게 신나게 놀 줄은 몰랐어요.”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의 짧은 말 한마디 한마디가 축제의 성과를 대신 말해주었다. 그 말 속에는 김제가 점점 ‘시민 중심의 도시’로 변해가고 있다는 믿음이 담겨 있었다. 올해 지평선축제는 단순한 행정행사가 아니었다. 아이들이 뛰놀고, 부모들이 웃고, 자원봉사자들이 그늘에서 안내를 하며, 한 지역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시간이었다. 화려하지 않았지만 오래 남을 장면들이었다.
축제 마지막 날, 벽골제 수면 위로 석양이 천천히 내려앉았다. 아이들은 불꽃놀이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부모들은 그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기자는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번 축제의 주인공은 무대 위의 연예인도, 현수막 속 구호도, 축제장을 찾은 유명인이나 정치인도 아니었다. 그늘 아래서 묵묵히 시민을 챙기던 이들, 그리고 예산의 한계를 넘기 위해 밤새 고민하던 공무원들이야말로 이 축제의 이름 없는 주인공이었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지평선축제에 대한 칭찬이 이어졌다. “김제축제 좋다고 그만해요. 사람들 더 오면 안 돼요.” 짧지만 강렬한 이 댓글 하나가 이번 축제를 상징하는 문장처럼 느껴졌다. 김제시가 얼마나 많은 정성과 진심을 쏟았는지를 보여주는 말이며, 시민과 행정이 함께 만들어낸 축제의 결실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문장이 아닐까. 기자로서, 그리고 한 명의 시민으로서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