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짐의 경계에서’ 자전거 소풍 가네

2025-10-12     박세린 기자

 

‘아직 떠나지 않은 이야기’이고, 언젠가는 ‘떠날 이야기’다. 

잊히는 것은 언제나 말보다 먼저 사라지는 것처럼, 언어가 바뀌면 풍경도, 사람도, 관계의 결도 바뀐다. 

임인숙 작가가 첫 수필집 ‘자전거 소풍 가네’를 출판하우스 짓다에서 펴냈다. 

시인이자 꽃 농사꾼으로 살아온 작가는 오랫동안 몸 담아온 정읍 산내면 절안마을의 이야기를 곱게 건져 올렸다.

절안마을은 작가가 태어나고,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땅이자, 세월의 흐름 속에서 점차 희미해지는 말과 풍경이다. 

수필집 곳곳에는 사라진 사물과 풍속의 이름이 생생히 되살아난다. 

‘고무신’, ‘각설이’, ‘도깨비불’, ‘혼불’ 등 이제는 대부분 독자에게 낯선 단어들이지만 그 말들이 지닌 감각과 온기가 문장 속에서 자연스럽게 숨 쉰다. 

임인숙 작가

책은 고향의 어르신들만의 이야기뿐 아니라 고향에 정착한 라오스 출신 노동이민자들의 삶도 함께 기록한다.

이방인으로서의 그들이 아니라, 같은 흙을 딛고 살아가는 이웃으로서의 그들을 바라본다. 

‘꽃을 기르는 일’이 단순한 생업이 아니라, 타인의 상처를 돌보고 함께 늙어가는 일상을 보여준다. 

임인숙 시인은 작가의 말에서 “떠났다가 돌아온 22년 사이, 나의 말은 바뀌었다”라며 “떠났던 22년의 말과 크고 작은 사건을 무화시키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남아야 한다. 남아야 삶의 자국이 된다”라고 말했다. 

천세진 시인은 추천사를 통해 “‘자전거 소풍 가네’는 깊은 증언이 이룬 숲”이라며 “숲으로 들어가면 사람들 곁에서 함께 나이를 먹은 짐승과 꽃과 나무와 사물들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고, 오래전에 떠난 사람들이 돌아와 제자리에 앉아 있고, 오래전에 끝났으리라 생각했던 이야기들이 이제 겨우 달구어져 있다”라고 밝혔다./박세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