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새만금 개발의 그늘 속에서 끝내 지워지는가"
대한민국 서해안, 그 중에서도 부안은 오랫동안 새만금이라는 이름 아래 묵묵히 희생해 온 땅이다.
1991년 방조제 착공 이후 33년. 바다는 막혔고 갯벌은 사라졌으며, 어촌은 생계를 잃었다.
한 세대가 넘는 시간 동안 부안 사람들은 정부의 ‘국책사업’이라는 이름 아래 고통을 감내해 왔다.
생계와 공동체의 균열 속에서도 국책사업의 대의에 동참하며 침묵했던 지역. 그러나 이제 그 대가로 돌아온 것은 또다시 ‘소외’였다.
지난 23일 행정안전부 중앙분쟁조정위원회가 새만금 스마트 수변도시의 관할 지방자치단체를 김제시로 결정했다.
부안군은 깊은 유감을 표명하며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표면적으로는 행정구역의 소관을 정하는 문제지만, 부안에게 이는 단순한 땅 문제 이상의 의미다.
새만금 개발의 가장 큰 희생을 감내해 온 지역이, 가장 중요한 핵심 거점을 앞마당에서 빼앗기는 모양새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부안군은 이번 결정이 새만금 개발계획의 핵심 방향성과 현장 행정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판단이라 지적했다.
2021년 새만금 기본계획이 개정되면서 개발 권역 체계는 남북 2축 도로 중심으로 재편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안전부는 과거 하천 연장선을 기준으로 한 낡은 경계선을 들이대며 결정을 내렸다.
시대에 뒤처진 행정 해석으로, 새만금이라는 국가미래 프로젝트의 핵심지 구획이 결정된 셈이다.
그 과정 또한 아쉬움이 크다.
중분위 심의 과정에서 부안군의 의견 진술 기회는 단 한 차례. 군은 충분한 논의와 숙의 과정을 기대했으나, 신속함만을 이유로 결정을 서둘렀다는 비판이 나온다.
부안군이 주장하는 '균형발전'이라는 헌법적 가치와 ‘희생에 대한 보상’이라는 정당한 권리가 이번 결정에서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큰 상처로 남는다.
권익현 부안군수는 “부안은 새만금 사업으로 가장 큰 피해를 감내해온 지역임에도, 국가 정책에 꾸준히 협조하며 함께해왔다.
이번 결정은 그런 현실을 외면하고, 균형발전이라는 헌법적 가치에도 역행하는 일”이라며 “정당한 절차를 통해 반드시 바로잡겠다”고 밝혔다.
새만금 스마트 수변도시는 약 660만㎡ 규모로 조성되는 미래형 복합도시다. 내부개발의 거점이자 미래 산업·주거 기능을 담당할 핵심 지역으로서,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선택은 향후 개발 성패를 좌우할 중요한 열쇠다.
국가 주도의 사업이라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피해를 감내해 온 지역의 입장과 권리를 존중하는 일은 국가의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다.
국가는 이제 개발 논리만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희생된 지역의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 기울여야 한다.
국책사업의 성공은 사업지에 숫자와 건물만 세운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지역의 신뢰와 동의, 그리고 상생의 토대 위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부안이 더 이상 새만금 개발의 그늘 속에서 잊힌 이름으로 남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이라도 국가가 균형발전이라는 헌법적 약속을 실천할 의지가 있다면, 그 첫걸음은 부안과의 신뢰 회복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