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마을에 진주단체장
/황성조 경제부장
한때 쌀을 포기했다가 끔찍한 대가를 치른 나라들이 있다.
필리핀은 쌀 자급이 가능했으나, 농지를 전환해 골프장 등을 만들면서 쌀 부족국가가 됐다. 결국, 태국·베트남 등에서 쌀을 수입하던 중, 2023년 베트남의 쌀 수출 중단으로 심각한 혼란을 겪고 있다. 필리핀 빈민층은 쌀값 폭등으로 큰 고통을 받고 있으며, 정부의 보조미도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 때 베트남은 이상 한파로 북부지방에서 흉작이 발생했다. 베트남은 내수 안정화를 위해 3개월간 쌀 수출 중단 조치를 내렸다. 이로 인해 세계 쌀 시장의 가격이 급등하며 필리핀 등 수입 의존국에 타격을 주고 있다.
아이티의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아이티는 1980년대까지 쌀 자급국이었으나, 미국의 압박으로 관세를 대폭 인하하고 수입쌀에 시장을 개방했다. 결국, 미국의 막대한 농업 보조금으로 인해 아이티 자국의 쌀 농업은 붕괴됐다. 2008년 국제 쌀값 폭등 시 아이티는 굶주림과 폭동이 발생하고, 일부 주민들은 진흙쿠키로 연명하기도 했다.
한국도 쌀 자급이 가능한 국가였으나, 농업 약화와 개방 압력 등으로 위기가 상존하고 있다. 또 1980년대 국내 자연재해로 미국산 쌀을 수입했었는데, 이때 높은 가격과 불리한 조건을 수용하면서까지 쌀을 사올 수밖에 없었다.
실제 세계 쌀 시장은 거래량이 적고, 그만큼 공급국의 조건 변동에 가격이 민감하게 작용한다. 식량자급을 이루지 못하면 위급할 때 국민들이 큰 위기에 빠질 수도 있음이다. 이제 쌀은 단순한 상품이 아닌 식량안보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 점에서 도내 한 단체장이 농협 조합장에게 내뱉은 말이 충격을 주고 있다. 해당 조합장이 쌀농사의 어려움과 쌀값 하락 걱정, 농민공익수당 인상 등을 하소연하자 나온 대답이 '돈도 안 되는데 뭐 하러 쌀농사를 짓나? 쌀이 식량안보나 국가안보에 기여한다는 것은 옛 말이다. 고소득 사업을 생각하라'는 조언이다. 그것도 공식 행사장에서 나왔다고 한다. '주변인의 만류 때문에 울분을 토하는 걸 실패했다'는 조합장의 토로가 씁쓸하기만 하다. 그 단체장의 행보는 일회성 실수가 아니라는 게 더욱 심각하다. 지난 봄 해당 조합의 주산지 특화작목 판매 행사장에 참여한 문제의 단체장은 인사말에서 '요즘 이 과일가격이 하락한다는데, 미리 고소득 작물로 전환했어야 옳았다'는 의견을 내놨다고 한다. 이에 해당 조합장은 "농민공익수당을 10원도 지원하지 않은 단체장이 쌀농사를 폄하하고, 농민 사정과 농업정책을 1도 모르는 단체장이 주산지 작목을 미리 바꾸라 하는데, 한 마디로 '정신이 나간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20.3%로, 세계 평균 100.3%에 비해 크게 낮은 상황이다. 이마저 지속 하락하고 있다. 식량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국제 곡물 시장의 변동과 정치·경제적 갈등에 매우 취약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 정부가 농촌 소멸을 막고 쌀값 하락을 방어하는데 쓰는 돈이 천문학적이다. 식량자급률 향상 등은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한 핵심 과제이기 때문이다. 각종 농업R&D 투자, 종자 확보 등 필수 조건을 갖추고 식량주권을 수호해야 안심하고 국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식량주권이란 전북도민들이 환경 친화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문화적으로 적합한 식량을 생산하고 소비하며, 우리들의 식량과 농업 체계를 결정할 권리를 뜻한다. 이는 시장 논리와 기업 이윤이 아닌 지역 생산자와 민중 중심의 식량 체계이며, 미래 세대를 고려한 지속 가능성에 가치를 두고 있다. 이제 돼지마을에 행차한 아는 게 너무 많은 진주단체장에게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농도 전북이 맞지 않는 옷이라면, 훌훌 벗고 떠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