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저온저장고, '과징금 폭탄' 논란...농민만 피해

최근 저온저장고에 김치 보관한 농민, '전기료 폭탄’ 한전, 저온저장고 단속해 ‘가공품’ 적발 시 과징금 부과 나락·배추는 되고 쌀·김치는 안된다?

2023-02-07     이상선 기자
전라일보 윤소희 디자이너

남원 지리산둘레길 언저리에서 농사용 하우스를 이용해 비수기에만 둘레객을 상대로 국수를 팔던 농민 A씨(68). 치솟는 농자재값·난방비…"농사짓기 힘드네요"

A씨는 '채소를 재배하겠다'며 농사용 전기를 더 저렴한 전기요금을 내기 위해 실제 용도와 다르게 전기를 사용하는 '계약종별 위반' 사례로 한전에 적발됐다.

A씨는 농사용 전기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한전으로부터 ‘과징금 폭탄’을 맞았다. 작년 기준 평균 판매단가는 ㎾h당 농사용은 56.9원, 일반용은 139.1원이다.

최근 농사용 전기를 사용하는 저온저장고에 김치 등 가공식품을 보관했다는 이유로 한전으로부터 ‘과징금 폭탄’을 맞은 전남 구례 농가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

A씨는 저온저장고를 쓴 것도 아니지만, 한전의 무원칙에 '과징금 폭탄'에 눈물을 흘렸다.

최근 한전과 농민간의 저온저장고 문제는 전남을 넘어 전북의 문제가 될 소지가 많다.

당시 단속에 나선 한전은 저온저장고에 쌀, 김치 보관은 안되고, 나락, 배추는 괜찮다는 논리로 과징금을 부과했다. 잠시 보관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농민단체로 구성된 대책위원회의 반발을 샀다.

지난해말 구례군 구례읍·산동면·토지면·광의면 등지에서 농업용 저온저장고 사용 실태를 점검한 한전 구례지사는 일부 농가에 농사용 전기 사용 계약을 위반했다며 과징금을 부과하고 일부는 일반용 전기로 전환 처리했다. 

농업용 저온저장고에 일반용 전기요금을 적용받는 장아찌와 같은 가공식품을 보관했다는 이유로 수십만원의 위약금을 부과받았다.

한전이 적발해 과징금을 부과한 농가는 60여곳, 과징금은 5000여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7일 한전의 '저온보관시설 및 단속 현황'에 따르면 저렴한 농사용전력을 사용하는 소형 농작물 저온보관창고는 전국에 13만9328개가 운영중인 것으로 집계됐다.

농사용 전기는 영세 농어민 지원을 위해 도입된 것으로, 타 용도 대비 현저히 낮은 요금을 적용하고 있다. 

이처럼 농사용 전력이 상대적으로 저렴해 농가에서는 이를 부정사용하는 사례가 늘면서 한전은 농사용전력 불법사용에 대한 단속을 벌여 지난해 126건을 단속해 5억9600만원의 위약금을 부과했다.

문제는 소형 농작물 저온보관창고에 농산물 가공품을 보관했다는 이유로 위약금을 부과받은 농민들이 한전의 조치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파문이 확산하고 있다.

한전 영업업무처리지침 제7장에서는 '농작물 및 보관 목적의 단순 가공한 농작물만 보관 가능하다'고 적시하고 있다.

한전은 이를 근거로 농작물만 보관해야 하는 저온저장고에 김치 등 가공식품을 보관한 농민들을 무더기 적발했다.

하지만 관련 지침에는 무엇이 농작물의 원물이고 무엇이 가공품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는 상황이고, 가령 나락과 배추는 허용하는 반면 쌀과 김치는 위약금 부과 대상인 가공품으로 분류하면서 농촌현장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특히 단속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 규정이 없는 것도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전의 애매한 규정에 근거한 위약금 부과로 인해 농림축산식품부의 소형 농작물 저온보관창고 건립 및 개보수 지원 사업의 취지가 무시됐다"고 지적했다.

한편 도내 농민들도 한목소리로 더이상의 혼란을 막기 위해 농사용 전력 사용 지침에 대한 조속한 개선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