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녀도

2021-11-17     오피니언

“뒤로 물러 누운 어둑어둑한 산, 앞으로 폭이 넓게 흐르는 검은 강물, 산마루로 들판으로 검은 강물 위로 모두 쏟아져 내릴 듯한 파아란 별들. 바야흐로 숨이 고비에 찬, 이슥한 밤중이다. 강가 모랫벌에 큰 차일을 치고, 차일 속엔 마을 여인들이 자욱이 앉아 무당의 시나위 가락에 취해 있다. 무당은 바야흐로 청승에 자지러져 뼈도 살도 없는 혼령으로 화한 듯 가벼이 쾌잣자락을 날리며 돌아간다…”

김동리가 쓴 단편소설 ‘무녀도’의 첫 대목이다.
이 소설은 1930년대 경주를 배경으로 무당 모화와 그의 아들 욱이 사이에 벌어진 비극적 이야기를 다룬다. 모화는 집 나갔던 아들 욱이가 기독교 신자가 돼 돌아오자 용납하지 못하고 갈등한다. 서로 다른 종교관 때문에 부딪치던 두 사람은 대결 구도를 이어가다가 결국 모화가 욱이를 칼로 찌르는 사태로까지 간다. 욱이가 죽자 모화는 마지막 굿판을 벌인 뒤 물속으로 잠긴다. 그 와중에 마을에는 교회가 세워지고 신도들이 늘어난다. 이 광경을 지켜본 딸 낭이는 아버지 손에 이끌려 방랑의 길을 나서고 타고난 재능으로 사람들에게 그림을 그려주며 목숨을 잇는다.

얼핏 이 작품은 토속 종교인 무교가 신종교인 기독교에 패배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모화의 마지막 굿판에서 보듯 승리와 패배의 문제가 아니다. 자기 세계를 지키려는 한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을 견고한 서사를 통해 형상화 했다는 평가다. 이 작품이 후일 노벨문학상 후보로 선정된 것만 보아도 높은 예술성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이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 했다. 한국 고유 정서를 세계에 각인시키고 있는 안재훈 감독이 무녀도를 뮤지컬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곧 국내 극장에 선보인다고 한다. 이 작품은 작년 프랑스 안시 국제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평론가들은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어울린 수작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요즘 K-컬쳐가 지구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BTS의 음악과 드라마 ‘오징어’, 영화 ‘기생충’ 등등이 문화시장을 흔드는 중이다. 1990년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구호가 유행한 적이 있다. 그 말이 딱 들어맞는 형국이다. 무녀도의 애니메이션 영화화는 또 한 번의 전통문화 세계화 성공사례가 될 수 있다. 무교를 살리자는 뜻이 아니다. 우리의 전통적 가치도 열린 예술 감성으로 잘 감싸면 전 세계인이 공감하는 가치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위드 코로나 시대이니 영화관에 한 번 나들이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