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각으로 본 ‘옹고집 희생양설’

<공존의 인간학> 발간 신호림 교수 기획 논문서 게재 조선후기 향촌사회 공존 중시

2020-03-16     이병재 기자

  고전소설 ‘옹고집전’에 나오는 진짜 옹은 욕심 많고 인색하며 불효한 인간이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금강산 도사가 가짜 옹을 만들어 동네 사람들과 함께 진짜 옹을 궁지에 몰아넣었고 마침내 진짜 옹은 참회하고 새 사람이 된다는 게 ‘옹고집전’ 주요 줄거리다.
  하지만 ‘권선징악’이라는 일반적인 시각을 넘어 옹고집이 사회적 ‘희생양’일 수도 있다는 논문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안동대 국어국문학과 신호림 교수는 논문 ‘<옹고집전>에서 재현된 조선 후기 향촌사회의 도덕경제와 공존의 의미’를 통해 조선 후기 향촌사회에서 ‘공존’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함의를 고찰했다.
  신 교수에 따르면 <옹고집전>이 시공간적 배경으로 삼은 조선 후기 향촌사회는 도덕경제가 작동하고 있었다.
  도덕경제는 농민이 이윤의 극대화보다 위험의 극소화에 초점을 맞춘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호혜성의 규범’과 ‘생계에 대한 권리’라는 두 가지 원칙을 통해 개인과 공동체를 존속시키게 한다. 하지만 이런 특성 때문에 경제력의 재분배라는 사회적 기조에 따르지 않은 구성원에 대해서는 공동체의 가차 없는 처벌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옹고집전>은 이런 도덕경제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옹고집을 향한 사회적 살해는 희생제의의 구조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옹고집을 희생양으로 삼아 공동체의 위기를 극복하는 서사적 양상을 보여 준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를 교정의 서사와 연결시킴으로써 옹고집을 향했던 공동체의 만장일치적 폭력을 겉으로 드러낸다. 옹고집은 누구나 공동체의 규범에서 벗어난 개인을 희생양으로 만들고 공동체 밖으로 축출할 수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인물이다.
  심 교수는 “공동체가 위기나 분열을 겪을 때, 그 책임을 통째로 전가시킬 수 있는 희생양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모두 ‘잠재적인 박해자’가 된다. 모두가 박해자이며 동시에 희생양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짊어지게 되는 것이다. <옹고집전>이 보여 주는 공존의 이면에는 만장일치적 폭력을 초석으로 삼아 쌓아 올린 일시적인 평화와 조화가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 논문은 전주대 한국고전학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학술지 <공존의 인간학> 제3집에 실려있다.
  <공존의 인간학>은 전주대 인문한국플러스(HK+)연구단이 연 2회 발간하는 인문학 학술지로 지난해 창간호와 제2집에 이어 세 번째 발간됐다.
  제3집에는 <탈유교사회의 문화현상과 ‘공동체’>라는 주제의 기획논문 3편과 일반논문 4편, 총7편의 논문이 엄격한 심사를 거쳐 게재되었다.
  기획논문으로는 상하이대학 문화연구학과 왕샤오밍(王?明) 교수의 <‘소인배’의 시대 ?오늘날 중국인의 정신과 문화 상황>과 안동대 국어국문학과 신호림 교수 의 <『옹고집전』에서 재현된 조선 후기 향촌사회의 도덕경제와 공존의 의미>, 그리고 중국 연변대학교 사회학과 허명철 교수의 <디아스포라의 정체성과 조선족 공동체의 역사 귀속>이 포함되었다.
  일반논문에는 전북대 사학과 하우봉 명예교수의 <18세기 초엽 일본 소라이문파(?徠門派)와 조선 통신사의 교류-다자이 다이(太宰春台)의 『한관창화고(韓館倡和稿)』를 중심으로>와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 아라키 가즈노리(荒木和憲) 교수의 <조일 강화 교섭 과정과 정탐사(偵探使)>, 일본 고쿠시칸(國士館)대 유은경 강사의 <나카라이 도스이의 『계림정화 춘향전』을 통해서 본 조선 인식>이, 마지막으로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김성수 교수의 <1910년대 한의학의 전회(轉回) -전통(傳統)에서 회통(匯通)으로의 변환>이 실렸다.
  한편 앞서 전주대 한국고전학연구소 HK+연구단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자료총서, <일제강점기 유교단체 기관지 기사목록>과 <전라남도유도창명회>를 발간했다.
  첫 번째 자료총서에는 일제강점기 「경학원잡지」를 비롯하여 중앙의 유교단체인 대동사문회, 유도진흥회, 조선유교회, 조선유도연합회에서 발행한 기관지 5종과 지방의 유교단체인 강원도유도천명회, 전라남도유도창명회, 충남 홍성의 유교부식회, 개성명륜회에서 발행한 기관지 5종의 기사별 세부목록을 수록하였다.
  두 번째 자료총서에는 일제강점기 유교단체 기관지들 가운데 지방 단위 유교단체의 대표격인 전라남도유도창명회에서 발행된 기관지, 「창명」 1~5호의 원문을 비롯하여 수록기사의 세부목록, 각 기사들에 포함된 인명의 색인어까지를 한 데 모았다.
/이병재기자·kanada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