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문학 대표 두 원로작가 '60여년 우정' 시화에 오롯이
순창농림학교 선후배 '인연'··· 장르별 대가 합작 의미 깊어
대담한 붓질과 화려한 색감으로 빚은 특유의 자연은 대한민국 예술원상을 전북 출신 최초로 수상하는 영예를 안겨줬다. 그런 박남재(88‧전 원광대 미술대학장) 화백이 하루 중 가장 많이 하는 일은 그림 그리기다.
옛 강이라는 뜻의 호 ‘고하’를 딴 고하문학관을 운영하며 지역 문학계의 든든한 버팀목이 된 최승범(87) 시인은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스스로를 다스린다.
미술과 문학, 각 분야를 대표하는 거장이자 영원한 현역인 두 예술인이 60여년에 걸친 우정을 시화에 아로새겼다. 누벨백미술관(관장 최영희)이 7월 31일까지 여는 기획초대전 ‘박남재 화백과 최승범 시인의 운명 같은 동행’은 두 원로작가의 두터운 사이를 지켜본 최영희 관장의 기획이다.
26일 만난 최 관장은 “순창농림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로 만나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온 두 분의 사연을 알게 됐다. 장르별 대가들이 합작한다면 보는 이들이 훌륭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뜻깊을 거 같아 시작했다”면서 “박 화백님이 계신 순창 섬진강 미술관을 여섯 차례나 오가는 등 어려움도 있었지만 최선을 다해주신 두 분이 계셔서 좋은 결과가 있는 거 같다”고 계기 및 소감을 전했다.
“나는 운동선수 출신이라 거친 면이 있었고 최 교수(최승범)는 얌전했죠. 그래서 잘 맞았는지 모르지만 끊임없이 만났어요. 친구처럼 지냈죠. 작업을 같이 한 적은 없지만 정신적으로 주고받는 건 많았을 겁니다.”(박남재 화백)
“몸이 좋지 않아 병원생활을 했는데 매일 병원에 찾아와주셨어요. 어렵사리 구한 귀한 약들도 제공해 주셨습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처지에 놓인 절 챙겨주신 겁니다.”(최승범 시인)
서로에게 남다른 애정을 품고 있는 작가들의 협업은 어떤 모습일까. 최 시인이 역대 자작시 중 마음에 와 닿거나 간결하고 형상화하기 좋은 20여 편을 선정하면, 박 화백이 글쓴이의 마음을 헤아린 다음 자신의 사유를 보태 간결하되 강렬하게 구현했다. ‘잎눈 트는 속에’ ‘세심’ ‘수심가’ ‘동화’ ‘청매’ 등이 그것.
기운 넘치는 대작에 천착해 온 박 화백이 생애 처음 시화에 도전한 만큼 과정도 궁금했다. “화선지와 수채화지를 가지고 했는데 기름이 많은 유화물감을 쓰면 번질 거 같고 사실적으로 그리면 유치할 거 같고…고민 끝에 유화로 추상과 구상을 오가며 완성했습니다. 전시장에 와서 보니 검정볼펜으로 한 번 더 그렸으면 선명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박 화백)
“쉽게 그릴 수 없는 그림을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분이 하시느라 애를 많이 쓰셨습니다. 막막하셨음에도 그걸 뛰어넘어주셔서 고맙고 멋집니다. 누군가는 너무 가벼운 작업이 아니냐고 하지만 협업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최 시인)
시의 속살을 관통한 뒤 회화로 재해석한 시화는 멋스럽다. 인터뷰 내내 계속해서 서로를 높이고 다독이는 우정은 은은한 향기를 더한다./이수화기자‧waterflower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