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전북 전주시의 한 장례식장에서 이태원 사고 사망자 빈소가 마련된 가운데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31일 전북 전주시의 한 장례식장에서 이태원 사고 사망자 빈소가 마련된 가운데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 언니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일찍 데려간 건지…”

수도권에 취직해 상경한 첫째 딸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31일 오전 찾은 전주시 송천동 대송장례식장. 이태원 참사로 숨진 A씨(30대·여)의 빈소는 침통한 분위기에 젖어있었다.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은 ‘비보를 들은 그 순간’에 멈춰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른 시간에 적막감이 도는 복도에는 A씨를 찾는 애끓는 울음소리가 드문드문 이어졌다. 일부 조문객과 유족들은 장례식장 입구에 비치된 안내 문구마저 보기 힘들다는 듯 이름자가 눈에 들어올 적마다 고개를 숙인 채 걸음을 옮겼다.

“아이고, 우리 ○○이 어떡해.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유족들은 한참 동안 똑같은 말만을 되뇌며 영정 앞에서 오열했다.

큰딸 이름을 부르며 서럽게 우는 A씨 어머니의 모습을 차마 볼 수 없던 친척 등 조문객들은 그 어떤 위로의 말조차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묵묵히 조문을 이어갔다.

둘째 동생 B씨는 “사고 소식을 듣고 연락을 해봤는데 받지 않았다. 이 정도로 연락이 안 되는 사람이 아니라 불안했다”라며 “하지만 이태원에 간다는 언니와 언니의 친구도 연락이 안 돼 마냥 기다렸다”고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전전긍긍하며 밤을 지새웠지만, 실종 신고를 접수한 지 6시간여 만에 끝내 비보가 날아들었다.

사고 당시 A씨의 휴대폰이 몸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가족들은 쉽사리 생사를 확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날 만난 유족들은 시신 확인 과정에서의 답답함과 함께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준비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B씨는 “사망 시각은 신고 시각보다 한참 전이었는데 모니터링 중이라는 기계적인 답만 반복할 뿐 아무런 확인도 되지 않아 답답했다”라며 “가족들은 언니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하염없이 밤을 지새웠다. 시신 확인 작업도 더뎌 오후 6시가 넘어서야 장례식을 치를 수 있게 됐다”고 토로했다.

같은 날 같은 시각 전주시 동전주장례식장에 차려진 C씨(여·29)의 빈소 역시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아 있었다.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흐느낌 소리와 아직 상황을 잘 모르는 어린아이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만이 정적을 깼다.

11시 입관 시간이 다가오자 유족들은 울음을 참는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장례지도사의 안내에 따라 하나둘씩 입관실로 향했다.

C씨의 어머니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언니 둘과 남동생 등 가족들은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 듯 멍하니 따라갈 뿐이었다.

고인의 남자친구는 그 뒤를 쫓지 못한 채 혼자 서성이다 벽에 기댄 채 소리 없는 울었다.

10분이 지나고 입관실에서 나온 가족들은 돌아오자마자 일제히 화장실로 들어가 세수를 했지만, 재차 새 나오는 눈물을 막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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