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축구의 나라다. 축구 기원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19세기 후반 영국에서 근대 축구가 시작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1862년 영국의 드링이 최초로 축구 경기 규칙을 만들었고 1863년 영국 축구협회가 결성됐다. 이렇게 되자 과거 부상자들이 속출하는 폭력적 놀이가 신사적인 스포츠로 변모했다. 이 모두가 세계 최초의 기록이다. 원래 축구를 뜻하는 영어는 풋볼(football)이었지만 미식축구가 생기자 이와 구분하기 위해 사커(soccer)라고 불렀다.

  영국 축구는 곧 세계적인 스포츠로 성장했다. 1863년 완성된 13개의 축구 규칙과 영국 노동자들의 성장, 영국 내 민족 간 경기 개최 등은 영국 축구를 최고의 스포츠 반열에 올렸다. 이어 1930년 탄생한 월드컵 대회가 축구의 세계화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영국인들의 축구 사랑은 상상 이상이다. 그만큼 축구를 둘러싼 갈등도 심하다. 축구와 영국 사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1928년 3월31일 웸블리에서 열린 민족대항전은 그 단적인 예다. 무려 8만 명의 관중이 모인 이 경기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대결이었다. 스코틀랜드는 영국에 속하지만 잉글랜드와는 다른 민족이며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가진 곳이다. 그래서 스코틀랜드인들은 늘 잉글랜드인과 불화의 씨앗을 품고 있다. 
  경기는 스코틀랜드의 5대1 압승이었다. 스코틀랜드인들은 열광했다. 숙적 잉글랜드 특히 민족 감정이 나쁜 잉글랜드를 눌렀으니 그 환희가 대단했던 모양이다. 스코틀랜드 언론들은 승리를 거둔 선수들에게 ‘웸블리의 마법사’라는 칭호를 붙였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민족대항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영국에서 축구는 하나의 종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축구 종가라고 자부하는 영국 축구가 최근 자존심을 구기고 있다. 잉글랜드는 지난달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2023 유럽축구연맹 네이션스리그 리그A 그룹3경기에서 3무3패의 초라한 전적으로 무너졌다.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그룹 최하위로 처졌고 리그 B로 강등되는 수모를 당했다. 팬들 사이에서 사우스게이트 감독을 경질하라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물론 스포츠에 영원한 강자는 없다. 그렇지만 잉글랜드로서는 이런 성적은 1993년 이후 처음 일이라고 한다. 영국인들의 실망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축구는 영국인들에게 종교나 다름없다. 국가 정체성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축구 경기는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기면 이기는 대로 지면 지는 대로 시끄러워진다. 앞으로 50여 일 남은 월드컵에서 잉글랜드가 어떤 성적을 거둘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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