皇華臺
이춘구의 세상이야기

황화대 칼럼-111 줄포만은 후백제 국제항·군항기지
 
  세계적인 조선업의 불황으로 2017년 조업을 중단했던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2023년 1월부터 재가동에 들어간다. 경제난을 심각하게 겪고 있는 군산과 전라북도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군산조선소 재가동은 우리 전북이 가지고 있는 조선산업의 유구한 역사에도 부합하는 일이어서 더욱 더 환영한다. 전북은 백제문화의 중심지이다. 백제는 중국 사서인 수서에서 설명하는 바와 같이 백가제해 즉 백여 개의 종족(도시국가)이 바다를 건너서 어우러져 사는 나라이다. 그 기본은 해양산업과 해상교통, 수군방위 등이다.
  송화섭 중앙대학교 교수는 백제문화의 가장 큰 특징으로 해양문화를 든다. 백제의 바다는 동아시아의 지중해이며, 줄포만, 변산반도, 동진강, 만경강 일대를 중심으로 마한, 백제, 후백제 시기 해양문화가 크게 발달했다고 한다. 후백제의 왕도 전주는 해항도시이자 물류중심 도시이다. 진훤대왕은 고부의 영주성에 거점을 두고 해상권 장악에 나섰다. 줄포만을 중심으로 강력하게 형성된 농업과 조선기술, 방위력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후백제는 중국과 왜(일본), 거란 등과 외교를 하거나 해상 교역 및 교류를 하며 후삼국 중 가장 강력한 국력을 형성하게 됐다.
  우선 줄포만 가운데 병선을 만들고 수군을 주둔시키는 곳은 검모포이다. 검모포는 오늘날 구진(舊鎭) 마을이다. 송화섭 교수는 진훤대왕이 검모포를 수군 병참기지로 조성했다고 설명한다. 선박용 목재는 변산에서 충당하기가 쉬운 곳이다. 진훤대왕은 909년 수군 선단을 이끌고 영산강 유역의 나주 해상세력들을 공격했다. 이 공격은 만경강 수로보다 줄포만 검모포에서 출발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관된 조선후기 지방지도 검모포영 지도에는 병선과 전선, 사후선 등이 표기되고 있다. 병선은 전선과 함께 전쟁에 나가 전선을 지원하는 배이다. 사후선은 적군의 동향을 정찰하고 탐지하는 정찰선이다. 이곳에서는 배를 만들 때 바닥에 까는 못탕목이 발굴됐다는 주민 김병수 씨 증언도 있다.
  다음으로 제안포는 후백제시대에 가장 활발하게 운영되면서 생긴 지명이다. 제안포는 보안면에 위치하고 있다. 제안포는 924년 정진대사 긍양 스님이 당 나라에서 귀국한 포구이다. 긍양 스님은 899년 당 나라로 건너갔다가 선종을 수학한 후 25년 만에 희안현 제안포로 귀국한 것이다. 제안포는 이처럼 신라시대 후기 국제적인 해상교역과 대외교류의 요충지로 역할을 했다. 보안면 유천리, 진서리에서 생산되는 고려청자도 제안포를 통해 유통됐다.
  셋째 사진포는 장삿배들이 정박하기 좋은 곳이다. 현재 흥덕면 사포리와 후포리 일대이다. 사진포는 수많은 상선들이 정박할 수 있을 정도로 큰 포구였다. 사진포는 조세미 운송 기지로서 역할을 했다. 고지도와 문헌기록 상 사진포 옆에 사창이 있다. 이로써 사진포 옆에 안흥창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흥덕현에는 부안곶이 있는 데 부안곶에서 사진포로 넘어 들어가기가 매우 쉬웠다고 한다. 고부세력이 관리운영할 정도로 번성했던 무역항으로 보인다.
  진훤대왕이 줄포만의 해상권 경영에 역점을 두면서 후백제는 후삼국 가운데 가장 강력한 나라로 부상했다. 그러나 궁예는 영산강 유역의 오다린 세력이 자신에게 귀부하자 903년 수군을 동원해 나주 금성산성을 공격하고 10여 개 군현을 점령했다. 909년 진훤대왕이 오월국에 보낸 사신선이 염해현에서 궁예 군에게 나포되자 진훤대왕은 909년부터 914년까지 영산강 유역 쟁탈전을 펼친다. 910년에는 친히 보병과 기병 3천 명을 동원해 나주 금성산성을 열흘 넘게 포위 공격했다. 그러나 진훤대왕의 삼한통일의 꿈은 내홍 등으로 무산됐다.
  검모포와 제안포, 사진포 주변은 유적지 보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하다. 검모포 토성에 올라서면 석축이 남아있고 포구 일대를 조망하기 좋다. 진훤대왕이 건설하려던 해상왕국의 위대한 꿈을 되살릴 수 있을 것 같다. 줄포만과 변산반도, 고군산도에서 백제시대에서 후백제시대까지 해양강국의 역사를 읽어볼 수 있다. 항해도시, 해항유적의 옛 모습도 복원할 수 있다. 전라북도의 해양문화가 동아시아 지중해에서 가장 활발하게 전개됐던 전북해양사(全北海洋史)를 읽어볼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진훤대왕이 꿈꾼 백제 해양왕국의 역사를 되살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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