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색이라는 용어의 사전적 의미는 서서시나 소설 따위의 문학작품을 희곡이나 시나리오로 고쳐 쓰는 일이다. 보다 범위를 넓혀서 보면 시나 소설, 수기 등 문예물을 영상물로 변환하는 작업이다. 그러나 현대와 같은 다매체 다채널 시대에서는 각색의 분야가 아주 광범해졌다. 하나의 이야기를 여러 매체에서 재창조하는 것을 모두 각색이라고 묶어 부른다.

  과거 각색을 배척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았다. 1950년대 이전에는 주로 소설작품이 영화로 각색됐는데 이를 놓고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즉 사회적 지위가 낮은 계급의 오락물인 영화가 위대한 문학을 차용하는 게 옳은가라는 질문이었다. 이에 대한 찬반이 들끓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각색에 대한 인식은 높아지고 당연한 일이 됐다. 상이한 매체 간의 영향 관계가 활발한 지금에는 각색은 새롭게 조명되는 영역이다.
  각색은 크게 세 가지 갈래가 있다. 원작에 충실한 각색이 그 하나요, 다원적 각색이 다른 하나다. 또 변형적 각색이라는 형태도 있다. 여기서 원작에 충실한 각색은 주제나 플롯, 캐릭터 등이 원작과 아주 근접한 경우다. 다원적 각색은 원작을 어느 정도 재해석하고 선택하며 변형하는 식이다. 마지막으로 변형적 각색은 원작을 바탕으로 하기는 하되 영상매체 등의 특성에 맞게 재창조하는 형태다. 일본 만화를 각색한 영화 ‘올드보이’가 대표적 예인데 두 작품은 스토리 자체에서도 큰 차이가 난다.
  여기서 논쟁거리가 되는 게 각색자의 의무와 권리다. 의무는 원작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요구다. 원작자의 정신과 의도 자체가 바뀌어서는 각색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각색자 권리는 대상 작품에 대해 어느 정도 선택과 변조, 재편성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유명 드라마를 웹툰으로 옮기는 일이 많아졌다. 인기를 끈 TV드라마를 웹툰으로 제작해 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원작 인기와 웹툰 인기는 영 딴판이라고 한다. 최근 종영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곧 웹툰으로 만들어졌는데 별점이 6.83으로 목요 웹툰 83개 가운데 82위였다. 웹툰업계에서는 그 이유를 각색에서 찾고 있다고 한다. 원작에 충실한 각색이 오히려 신선감을 떨어트렸다는 것이다.
  각색을 깊이 들여다볼수록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든 드라마든 웹툰이든 각색 작가를 구하는 것이 힘들다는 게 중론이다. 각 매체의 문법에 통달해야 하는 것은 물론 원작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야 좋은 각색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원작에의 충실성과 각색 작가의 창조적 자유가 변증법적으로 결합되어야만 좋은 각색 작품이 나온다는 결론이다. 그나저나 앞으로 이야기의 매체 간 이동이 얼마나 활발하게 진행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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