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군선 판옥선은 그간 거북선에 가려 그 존재감이 희미했다. 임진왜란을 기술하는 교과서들은 한결같이 판옥선에 대한 언급보다는 입에서 불을 뿜는 거북선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하지만 여러 차례 해전에서 왜군을 무찌르는 데 결정적 공헌을 한 군선은 바로 판옥선이다. 숫자도 거북선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데다 연안 전투에서 유리한 조건들을 갖춘 덕분에 맹활약할 수 있었다. 사실상 임진왜란의 승리의 일등공신인 셈이다.

  판옥선의 원조는 맹선이다. 조선 초기 조정은 맹선을 전선으로 운용했다. 하지만 우리 땅을 침범해 노략질을 하던 왜구들은 화기로 무장한 데다 배에 방패를 세워 우리 수군의 총통을 막았다. 별다른 강점이 없던 맹선으로 이들을 토벌하기에는 적절치 않았다. 그래서 나온 게 바로 판옥선이다. 
  판옥선은 오로지 전투 목적으로 개발된 군선이다. 배수량은 대략 80톤에서 280톤 가량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로서는 대형 선박이었다. 바닥은 평저선으로, 갑판은 2층 구조로 돼 있었다. 그래서 노를 젓는 노꾼들은 아래에서 그리고 전투원은 2층에서 각각 임무를 수행했다. 갑판에는 지휘 및 전투용 망루가 자리잡았다. 또 두꺼운 목재를 이용해 만들었기 때문에 튼튼했다. 이순신 장군 관련 영화에서 늘 등장하는 충파 즉 왜선을 들이받아 부수는 것이 가능했던 이유다. 그리고 대형 군선이어서 파괴력이 큰 대형 화기를 실을 수 있었다. 속도도 맹선 보다는 훨씬 빨랐다. 기동력이 좋아야만 날렵한 왜구 배를 추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점도 없지 않았다. 우선 연근해 항해용이어서 수송력이 부족하고 긴 항해에는 적절치 못했다. 또 아무래도 속도 면에서 일본 수군의 쾌속선에 비해 뒤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 약점들은 사실 대양해군의 경우에나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소들이다. 주로 연근해 방어용으로서 판옥선은 굳이 약점들을 보완할 필요가 없었다.
  충북 청주에 판옥선이 뜬다는 보도다. 오는 2025년까지 미래해양과학관을 짓는데 그 외관을 판옥선 모양으로 한다는 것이다. 이는 지역주민 설문 조사 등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결정한 사안이라고 한다. 내륙지역에 들어서는 만큼 해양 느낌을 최대한 살리자는 취지다. 아울러 판옥선이 갖는 역사적 의의도 담자는 뜻이 반영됐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판옥선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된 것 같아 다행이다. 조선 시대 수군의 주력함으로서 그 우수성에 대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 배를 설계할 때 이웃 중국이나 일본의 함선까지 두루 연구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오늘날 우리 조선산업이 세계를 제패한 것도 다 연원이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조선 기술은 조선 시대부터 그 우수성을 담보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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