皇華臺

이춘구의 세상이야기

황화대 칼럼-109 신선이 사는 곳 은선리 유적

“송하(松下)에 문동자(問童子)하니 스승은 영주 방장 봉래 삼신산(三神山)으로 채약(採藥)하러 가셨나이다. 지재차산중(只在此山中)이언만 운심(雲深)하여 부지처(不知處)라. 동자야! 선생이 오시거든 적송자(赤松子) 왔더라고 여쭈어라.” 우리의 전통시조에 나오는 선경의 모습 가운데 하나이다. 삼신산은 도교 신들의 산이며, 적송자는 비를 다스리는 신선의 이름이다. 영원 은선리(瀛原 隱仙里) 백제 고분군을 찾으면 이 시조처럼 신선의 세계에 든 듯 마음이 한가해진다.

백제시대 중방성인 고사부리성 경역 은선리, 도계리 일대에는 275기의 횡혈식 석실고분이 있다. 석실 고분은 피장자의 키에 맞춰 화강암 등을 평편하게 깎아 돌방을 만들고 입구를 낸 게 특징이다. 은선리 천태산 고분군은 백제 웅진기(475~538)에서 사비기(538~660) 사이에 축조된 것으로 알려졌다. 천태산 고분군은 웅진기 말부터 공주의 지배계층이 내려오기 시작해 사비기 전기에는 백제의 중방성이 번창했음을 말해준다. 은선리 고분군은 문헌 기록도 없는데 유물마저 도굴된 상태이니 은선리 백제사를 완성시키는데 참으로 난망하다. 그러나 최근 문화재청이 천태산 고분군을 사적으로 지정해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은선리는 신선이 지내는 곳, 도계리는 도교의 가르침이 계곡처럼 흐르는 곳이라는 뜻의 지명이다. 백제 고분이 군집해있는 천태산! 천태산은 도교의 성지이자 백제인의 영원한 휴식처이다. 도교는 무위자연의 신선사상이다. 천태산은 영주산인 두승산의 도맥을 이어받는 곳이다. 도교에서 영주산은 방장산, 봉래산과 더불어 삼신산으로 추앙받는 영험한 산이다. 삼신산에는 불로불사의 약이 있고, 삼신산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선인들이라고 한다. 영원에 영주산과 천태산, 은선리, 도계리 등은 온통 백제시대 수도 부여에서 건너온 선경의 명칭인 듯하다.

송화섭 중앙대학교 교수는 두승산이 영주산이듯이 방장산은 고창의 반등산, 봉래산은 부안의 변산을 가리킨다고 설명한다. 고부문화권의 삼신산과 도교 관련 명칭은 백제시대 중방성의 중심 세력이 도교를 신봉했음을 말해준다. 우리는 7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백제 금동대향로를 통해 백제의 도교 신앙을 살필 수 있다. 금동대향로는 부여 능산리의 백제시대 고분군과 사비성의 나성 터 중간에 위치한 유적 현장에서 백제시대의 다양한 유물들과 함께 발굴 출토됐다. 동체를 연꽃봉오리로, 뚜껑은 산 모양으로 만들어 많은 물상(物象)을 등장시켰고 정상에 봉황을, 아래에는 용을 배치했다. 이로 보아 향로 뚜껑에는 불로장생의 신선들이 현악기를 들고 선음(仙音)을 연주하고 선계의 동물들이 어우러져 살고 있다는 해중(海中)의 박산(博山) 즉 신선세계이자 별천지·이상향을 묘사했다는 전형적인 박산향로(博山香爐)이다.

신라시대 고운 최치원은 도교 신선사상에 대해서 현묘지도의 원류 가운데 하나로 설명한다. 우리나라 사상과 종교는 원래 유불선 삼교를 포함한다는 게 고운의 설명이다. 고운은 난랑비서문에서 “나라에 현묘(玄妙)한 도(道)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 한다. 이 교를 창설한 내력은 선사(仙史)에 자세히 밝혀져 있다. 실제로 유불선 삼교를 포함하고 군생을 접촉하여 변화시킨다. 이를테면 들어와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가서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노사구(魯司寇, 공자)의 주지(主旨)와 같고, 무위(無爲)로써 세상일을 처리하고 말없는 가르침을 행하는 것은 주주사(周柱史, 노자)의 종지와 같으며, 모든 악한 일을 하지 않고 모든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는 것은 축건태자(竺乾太子, 석가)의 교화와 같다.”고 설파했다.

송화섭 교수는 고부문화권에 깃든 도교문화유적을 잘 정비해서 중국과 동아시아 도교 신자들의 성지순례를 유도하는 게 좋다고 귀띔해준다. 국내에서도 삼신산 중 하나인 영주산을 중심으로 백제 신선들이 은거하는 선경유적지 탐방을 제안하고 있다. 은선리와 도계리를 따라 천태산을 둘러보고 영주산으로 향하면 백제 도교문화의 전통을 만나게 될 것이다. 역사는 일회성으로 그치는 게 아니다. 역사는 항상 되풀이 한다. 고사부리성 중방성의 도교 문화는 종교의 세계적 보편성을 지향한다. 중방성을 찾아 도교 문화의 정수를 느껴보는 신선기행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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