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언저리에 잠시 머무르려고 했던 것이 어느덧 25년 동안 강물에 붓을 적시게 되었습니다”.

섬진강 화가로 불리는 송만규 화백의 말이다.

송 화백은 우리나라 미술사에서 처음으로, 섬진강 전체를 부감하며 잡아낸 8장면의 사계를 총 32장의 대형 화폭에 그려냈다.

이 그림들과 함께 강의 덕성과 품성을 드러낸 작가의 사유 어린 창작 과정을 잔잔한 글에 담아 ‘강의 사상(기획출판 거름)’을 펴냈다.

▲ 붕어섬 봄 2014, 105x198, 순지에 수묵채색

그는 섬진강의 풍경을 잡아내기 위해 산을 오르기 전, 그에 깃들어 사는 사람과 자연의 생명에 눈길을 먼저 돌린다.

송 화백은 “이른 봄 시린 손을 불어가며 걷다 보면 논두렁 사이로 가녀리게, 조용히, 아주 맑게 흐르는 물소리가 들려온다. 산 능선에 쌓였던 눈과 얼음이 녹아내리는 물이다. 갓 돌 지난 사내아이의 오줌 누는 소리와 같다. 새 생명, 희망의 소리다!”라고 전한다.

낮은 곳으로 흐르는 강물처럼 낮게 더 낮게 자신을 낮추며 강을 만나는 송 화백의 몸과 마음은 어느덧 강과 하나가 되어 간다.

▲ 구담 봄 2014, 120x215, 순지에 수묵채색

강물과 합일한 채 그려낸 곳이 바로 이름하여 ‘섬진팔경’이다.

책에서는 임실 붕어섬과 구담마을, 순창 장구목, 구례 사성암·왕시루봉, 하동 평사리·송림공원, 광양 무동산 등이 펼쳐진다.

유장하게 흐르는 섬진강처럼 그림은 크고 웅장하다. 21m 길이의 ‘새벽 강’과 24m 길이의 ‘언 강’은 수묵의 절정미를 보여준다.

골짜기 골짜기를 굽이굽이 낮게 흐르며 뭇 생명을 살리고, 사람을 깃들게 하면서 ‘스스로 그러하게’ 풍광과 자연을 만드는 강물의 행행지도(行行之道)를 겸애(兼愛) 정신이라 사유하며 그 스스로 강물이 되어 간 과정을 담담히 담아냈다.

▲ 장구목 여름 <새벽강> 2005, 93x2100, 수묵채색

조은정 미술평론가는 작가의 이 고뇌 어린 과정을 “21m 길이의 ‘새벽 강’과 24m 길이의 ‘언 강’은 ‘단숨에 미친 듯이’ 그려냈던 것인데 ‘지난한 세월을 담아 피 토하듯 매달려 그린 것’이라고 자평한다. 이 간단한 몇 마디에 우리 모두 경험한 사회였고 세월이었지만 이른바 미술운동을 한 그가 치렀을 혹독한 세월이 어떤 것이었는지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고 평했다.

강의 화가에서 ‘강의 사상가’가 된 송만규 화백은 1955년 전북에서 태어나 원광대학교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 2002년에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구미마을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섬진강 물길을 수없이 걸으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물이 건네는 메시지를 한지와 수묵으로 담아내고 있다. 현재 한국묵자연구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임다연 기자·idy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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