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교육이란 지식교육의 상대적 개념이다. 지식 전달 위주의 교육이 아니라 지 ·덕 ·체의 통합 및 조화로운 발달을 목적으로 한다. 인간이 지적으로 발달해야 함은 물론이지만 정서적이나 신체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고르게 발달해야 한다는 인식이다. 

  가까운 예를 들어보자. 두뇌가 우수한 천재가 덕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가정하면 그에 따른 문제는 상상을 초월한다. 빼어난 두뇌는 윤리적 감각 없이 그저 자신의 이득이나 명예를 위해 가동할 것이다. 악한 의도를 갖게 되면 높은 지능만큼 사회에는 더 큰 피해를 주게 된다. 우리가 가끔 매스컴에서 보는 사기 사건을 보면 사기범들의 영리함에 혀를 내두르게 마련이다.
  사실 역사적으로 교육은 전인교육이 주를 이뤘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인간성의 조화로운 발달이 지상목표였다. 르네상스 때에도 인문주의라는 이념 아래 다재다능하고 조화로운 인간 실현에 기여하는 교육에 집중했다. 그런가 하면 존 로크는 구체적으로 귀족 자제 교육의 차원서 지육, 덕육, 체육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동양에서 전인교육은 서양보다 더 강조됐다. 유교가 그 바탕이 됐다. 공자는 전인적 인성을 인(仁)이라 하고 이를 갖춘 사람을 군자라고 해서 이상형으로 삼았다. 전통 유교 정신은 오로지 인의 실현에 있었다. 맹자가 강조하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도 같은 맥락이다. 순자 역시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보기는 했지만, 교육을 통해 인성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산업화 사회가 열리면서 사정은 급변했다. 전인교육은 쇠퇴하고 지식교육이 득세했다. 교육은 전문가와 기술자, 기능인을 길러내는 데 열중하는 양상이다. 그래야 교육받은 사람들이 직장을 얻고 돈을 많이 벌고 떵떵거리며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인문적 교양이나 예의 도덕은 뒷전이다. 
  박순애 교육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후보자가 과거 논문에서 대학의 전인교육을 강조했다고 해서 화제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인재수요에 부응하는 역량 중심의 대학교육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썼다. 요지는 중고교 교육이 입시 위주인데다 대학마저 인성교육의 책무를 다하지 못해 전인교육이 안 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작 기업이 원하는 인재는 윤리성과 협업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는 의견도 냈다.
  논문의 방향은 새 정부가 교육부 존재 이유를 ‘과학기술 인재 공급’이라고 규정한 데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정부 방침은 실용교육을 지금보다 더 강화해야 한다는 쪽이다. 교육계는 전인교육이 더 소홀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하고 있다. 박 후보자의 견해는 따라서 현실적인 정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어 보인다. 전인교육과 지식교육의 접점을 찾는 지혜가 나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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