皇華臺
이춘구의 세상이야기

황화대 칼럼-98 후백제견훤대왕 표준어진 Ⅲ
 
  후백제 왕도인 전주·완주와 후백제 중심경역인 전라북도는 이제 비로소 후백제역사를 바르게 세워나가려고 한다. 먼저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에 후백제권을 포함시키는 법 개정작업이 국회에서 진행되고 있다. 전주시는 새로운 우범기 시장 체제 하에서 후백제 궁성 복원 등의 사업을 추진할 방침이다. 필자는 경주시 사례를 따라 전주시도 「후백제왕경 핵심유적 복원ㆍ정비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때를 맞추어 전주시는 진훤왕의 어진제작을 추진하고 있어 시민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전주하면 지금까지 태조 이성계 어진과 한옥마을을 생각했다. 진훤왕의 어진을 제작하고 국민이 이 어진을 보게 되면 이제 전주 하면 태조 진훤 어진과 후백제 궁성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후백제 왕도로서 전주·완주의 인상을 크게 부각시킬 것이다. 완주는 당시 전주와 한 몸이었다. 태조 진훤의 어진은 진훤왕과 후백제가 우리 역사에 남긴 발자취와 영향을 새롭게 조명하게 할 것이다. 고대국가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중세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진훤왕이라는 표기는 옥편에서도 성씨를 말할 때에는 ‘견’이 아니라 ‘진’으로 발음해야 한다고 명기하고 있고, 이도학 교수 등 여러 사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에 따른 것이다.
  전라북도와 전주시, 후백제학회, 후백제선양회, 후백제시민연대 등이 주최하고 주관한 「후백제 견훤대왕 표준영정제작 학술세미나」에서 고려대학교 박현숙 교수는 정부의 표준영정제도의 의의와 절차 등을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진훤왕의 표준영정을 제작하려면 정부가 정한 기준과 절차를 지켜야 한다. 우선 ‘선현’에 걸 맞는 업적의 평가가 우선되어야 한다. 진훤왕은 신라인으로서 백제의 부흥을 도모하였으며, 신라 출신 관료들과 여러 지방의 호족 등을 중용하였다. 이도학 교수와 송화섭 교수 등 역사학자들은 지역을 뛰어넘어 삼한통일을 지향했다는 점 등에서 ‘선현’의 기준에 부합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태조 왕건과 고려에서는 소위 ‘훈요십조’ 등을 통해 진훤왕과 후백제 역사를 폄하하거나 지우려고 하고 있다. ‘훈요십조’는 역설적으로 후백제의 국세가 왕성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삼국사기』를 펴낸 김부식 또한 신라 중심의 왜곡된 사관에서 진훤왕을 깎아 내린 것임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889년에서 936년까지 48년 간 고대국가 후백제를 경영한 진훤왕의 족적을 쉽게 지울 수는 없다.
  필자는 진훤왕의 용안을 부여 백제계 진씨 성을 지닌 영웅의 모습으로 상상하고 있다. 박현숙 교수의 주제발표를 보면서 필자는 이 같은 생각을 더 굳히게 되었다. 우리나라 영웅과 선현 가운데 진훤왕의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 분들은 백제 무왕과 고구려 광개토대왕, 을지문덕 장군 등이다. 이 가운데서도 최웅 화백이 2001년에 그린 무왕 어진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익산의 서동설화, 선화공주 일화, 그리고 미륵사 창건 등과 관련되기 때문일까? 
  세미나에서 조법종 우석대학교 교수는 교과서에서 굳어진 견훤대왕 표기를 바로 잡는 문제가 시급하다고 의견을 제시하였다. 또한 어진을 제작했을 경우 모시는 전각을 정하는 것도 지금부터 생각해야 한다고 하였다. 진정환 국립익산박물관 학예실장은 전주시민의 관심이 큰 만큼 전주시민의 표준얼굴을 찾아내 이를 어진제작에 참고하자고 대안을 제시하였다. 어진을 모시는 전각은 경기전의 어진전처럼 위용을 갖춘 어진전을 새로 지어야 할 것이다. 어진전의 위치 또한 후백제 궁성 터로 추정되는 인봉리에 세우는 것도 시급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강회경 후백제선양회 회장은 경기전에 모셔진 태조 이성계, 개태사에 모셔진 태조 왕건의 어진처럼 태조 진훤의 어진전도 걸맞게 잘 지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강회경 회장은 선양회를 중심으로 2017년부터 해마다 음력 9월 9일 진훤대왕 숭모제를 지내고 있다. 우리가 오늘 후백제사의 정립과 태조 진훤왕에 대한 올바른 평가, 후백제 왕경 복원, 그리고 태조 진훤의 어진 등을 논하는 것은 대한민국 역사를 바르게 세우고 국민의 대통합을 이루자는 취지와 다름이 없다. 태조 진훤의 어진을 통해 후백제 왕도로서 전주·완주의 정체성이 형성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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