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나라 조선

전라일보l승인2022.06.28l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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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감탄할 수밖에 없고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 해도 어디든지 책이 있다는 사실이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습격하고 외규장각 도서를 약탈했다. 그 함대의 장교이던 주베르가 한 말이다. 기록에 의하면 프랑스군이 강화도에 있던 외규장각을 침입했을 때 거기에는 수천 권의 책이 있었다고 한다. 또 그 책들의 상태가 너무나 완벽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우수한 종이 질과 접합 장식 등이 프랑스군 눈에는 경이적으로 비쳤던 것이다.
  조선조를 ‘책의 왕국’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많다. ‘문(文)의 나라’라고 적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 증거로 한글을 비롯해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를 든다. 모두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문화재들이다. 세계 어느 왕조를 뒤져보아도 이만한 방대한 역사기록을 가진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 같은 조선조 문기(文氣)는 사가독서(賜暇讀書)제도에서도 잘 드러난다. 사가독서제란 조선시대에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젊은 문신들에게 출근하지 않고 독서에만 전념하게 한 제도다. 이 제도는 세종조이던 1426년 12월 처음 실시된다. 왕은 권채와 신석견, 남수문 등 3인의 집현전 학사들을 선발해 관청공무에서 손을 떼고 집에서 오로지 독서와 연구, 저술에만 매달리도록 했다. 사가독서제는 이후 중단과 부활을 거듭하면서 이어지다가 영·정조 시대에 이르러 폐지됐다. 
  사가독서제의 대표적 사례는 동호독서당의 건립이다. 중종은 사가독서제에 힘을 쏟아 한강 두모포(오늘날 옥수동) 월송암 근처에 동호독서당을 짓도록 했다. 1517년 완공된 이 건물은 규모가 크고 꾸밈도 화려했으며 식량 및 공급물도 훌륭했다고 문신 김안로는 썼다. 여러 명의 젊은 문신들이 독서에 열중해 독서당은 항상 빈집처럼 조용했다고 한다.
  중종 재위 기간 선비들의 뱃놀이 모습을 그린 ‘독서당계회도’가 해외를 떠돌다 미국 경매를 통해 최근 국내로 돌아왔다. 16세기 실경산수도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 작품이자 예술성이 뛰어난 수작이다. 독서당은 바로 사가독서를 하던 장소이고 계회도는 문인들의 모임인 계회(契會)를 말한다. 이 그림에는 두모포와 그 옆 독서당이 그려져 있다. 이 모임에 참가한 12명의 젊은 관료들의 이름도 적혀 있다. 
  ‘독서당계회도’는 조선조 선비들의 문기가 그대로 나타난 또 하나의 귀중한 문화재다. 조선조가 무려 오백 년 동안이나 존립할 수 있었던 데는 이런 문운(文運)이 작용했을 것이다. 경매 낙찰가가 6억 원에서 9억 원 정도로 추정된다고 하지만 그만한 가치를 뛰어넘는 귀중품이다. 새삼 우리 선조들의 ‘문자향서권기’에 고개가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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