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에서 잘 알려진 5백나한 설화가 있다. 아함경에 나오는 이 이야기에서는 부처님이 스님으로 등장한다. 수행이 뛰어난 그 스님은 어느 날 밖에서 돌아오는 길에 무심코 남의 보리 목 셋을 뜯어 입에 넣고 말았다. 도둑질을 한 셈인데 뒤늦게 이를 깨닫고 남의 집 소로 들어가 3년간 뼈 빠지게 일했다. 이로써 과보를 달게 받은 스님은 3년 후 주인집에 들이닥친 도둑 5백명을 제도해 착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이들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출가해 도를 깨쳤다. 경전은 이들 5백명을 오백나한이라고 기록했다.
  여기서 보듯 나한이란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다. 원래는 범어로 아라한이라고 한다. 비록 사람이지만 일체 번뇌를 끊고 도가 부처님 경지에 도달한 존경받을만한 이들이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5백나한도 신앙의 대상이 된다.
  나한은 인간의 소원을 성취시켜 준다는 게 불교의 믿음이다. 이 나한신앙은 중국에서는 당송시대 유행했고 우리나라에서도 고려 때 대중들에게 크게 어필했다. 나한재는 고려 때 국가적 행사였다. 조선조에서도 비록 상류층은 억불숭유 정책으로 불교 자체를 외면했지만 민중들은 여전히 나한을 친숙한 복전이라고 여기고 섬겼다. 지금도 다수 사찰에는 나한전이라는 이름의 법당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나한을 그린 그림이나 새긴 조각이 많이 남아 있다. 종교적으로 숭엄한 분위기의 불상이나 보살상과 달리 나한상이나 나한도는 자유분방한 모습을 담고 있다. 그 숫자도 다양해서 불경에 따라 16나한에서부터 5백나한, 1200나한 등이 나온다. 사찰에서는 이를 근거로 미술품을 제작했다. 당연히 우리 민족의 심성을 닮아 소박하고 파격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호주 시드니에서는 최근 한국 관련 전시회가 누적 관람객 23만 명을 기록하고 막을 내렸다. 이 전시의 주인공은 바로 국립춘천박물관이 소장한 고려시대 나한 석조상 50여점이다. 이 나한상들은 강원도 영월 창령사터에서 나온 5백나한 중 일부다. 일간지 시드니모닝헤럴드는 “나한전은 2022년 가장 아름다운 전시 중 하나”라고 격찬하고 온화한 미소의 나한상이 힐링의 시간을 선사했다고 평가했다. 또 디오스트레일리안 신문은 “우리의 고통과 세속적인 애착이 5백나한의 평화로운 명상을 방해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라고 호평했다.
  사실 우리나라 불교미술의 수준은 세계적이다. 명성자자한 석굴암이나 미륵반가사유상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5백나한상은 다른 차원서 예술성을 마음껏 과시한다.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천의 얼굴이다. 포즈도 다 다르다. 손을 입안에 넣고 있거나 하늘을 쳐다보는 등 다양하다. 그 익살이 호주인들의 심금을 울린 것이다. 나한의 얼굴은 가까운 친구나 이웃집 사람, 친척의 얼굴, 결국 나의 얼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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