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법을 찾아서 / 황석현

 근무하던 사업소에 ‘산약회’라는 동호회가 있었다. 약초에 관심이 많은 직원이 모여 만든 모임이다. 하루가멀다 하고 술을 마시는 직장동료인데 장거리 마라톤을 완주하는 운동선수처럼 팔팔하게 건강을 유지하고 있었다.

진시황이 즐겼다던 명주인 시펑주를 마시는 것도 아니고 흔하디흔한 소주를 저렇게 들이키는데도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남다른 이유가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나는 비법을 알기 위해 하루 시간을 내어 그들과 동행했다.
 회원들을 따라 이름 모를 산에서 태고의 자연과 마주했다. 그 길에는 목적지를 안내하는 표지판 따윈 없다. 끝을 알 수 없는 무수한 갈림길만이 존재하는 미궁 앞에서 우매한 인간의 한 걸음을 내디뎌 보았다.
 산 사나이들의 발걸음은 대자연과 나뒹굴며 쌓아온 그들의 경험만큼이나 대담했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닐진대 산의 숨결을 따라 발을 내디딘다. 산바람이 길을 알려주는 듯 걸음걸음에 주저함이 없다. 분명 같이 출발했는데도 그들은 한참을 앞서 나가는 것을 보면 산신령이 산속의 만물을 부리던 재주를 얻었음이 분명했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내가 올랐던 산들은 아스팔트가 깔리거나 계단이 놓아진 걷기 좋은 산이었다. 태초부터 조물주가 창조해 놓은 길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그 길에 눈길을 두지 않았다. 인간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며 조물주의창조물을 깎고 다져 만든 오직 인간만을 위한 길만 찾아다녔다.
 동물원의 동물들은 야생본능이 떨어진다고 한다. 인간이 주는 먹이에 도취해 스스로 이빨과 손톱을 사용해 사냥하는 법을 잊어버린 탓이다. 내가 그런 꼴이다. 가지런히 정렬된 계단을 오르는 것이 전부였던 나에게 야생본능은 흐릿해져 있었다. 햇볕과 바람과 땅이 만들어낸 야생의 길은 문물에 길든 내게 그 발길을 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에 비해 주말마다 도심을 떠나 자연으로 돌아갔던 그들은 약초꾼들은 야생본능을 간직하고 있었다.
 청솔모가 나무 위를 오르듯 부지불식간에 산 중턱에 오른 그들은 이내 먹잇감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산사나이들은 따라잡기에 너무 재빨랐다. 나는 결국 산행을 포기하고 적당한 자리에 앉아 주변 경치를 둘러봤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던 야생의 산에는 수목원처럼 눈길을 사로잡는 알록달록한 꼬까옷을 입은 꽃들도 없었다. 다만 수풀사이로 새색시처럼 수줍게 고개를 내민 풀꽃만이 있었다. 타들어 가는 뙤약볕과 쓸려나갈 것 같은 비바람을 견뎌낸 강인한 생명이었다. 풀꽃에서 잘 꾸며진 화원에서 자란 꽃에서는 맡을 수 없는 진한 향기를 풍겼다. 풀꽃의

향기는 인위적이 아닌 숲의 생기를 머금은 생명의 향이었다. 어려움 없이 자라난 화원의 꽃들에서는 맡을 수 없는 향이다.
 지금의 나에게 풀숲의 이름 모를 꽃처럼 생명의 강렬한 향이 뿜어져 나오는지 궁금해졌다. 그동안 걸어오며 마주친 인생의 갈림길에서 사회적인 통념들이 다져놓은 쪽으로만 다니던 내게 코가 찡한 향기는 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해진 틀에서 살다 보면 야생의 향기를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온실 안에 있을 때야 상관없지만 야생으로 내동댕이쳐질 때 다른 이들에 비해 특별한 향기가 없다면 길 가던 나그네의 눈길조차 얻지 못할 것이다.
 야생으로 돌아갈 때를 대비해 자신의 향기를 되찾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야생의 향기를 갖기 위해서는 온실 속에서는 겪을 수 없었던 타들어 가는 햇빛도 모든 것을 휩쓸어가는 바람에도 맞서야 한다. 미리 강인한 체력과 정신을 길러야 시련을 쉽게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산사나이들처럼 말이다.
 해가 저물며 주변이 황혼으로 불타오를 무렵, 산사나이들이 약초를 한 아름 짊어지고 내려왔다. 그들로부터 자연 숨결이 함축된 야생의 향이 나는 것 같았다. 그동안 궁금해했던 산약회 회원들의 숨겨진 비법을 찾아낸 것 같아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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