皇華臺

이춘구의 세상이야기

 

93-전주는 물류중심 강해도시

후백제 수도 전주는 만경강 수로를 중심으로 물화를 교역하는 강해도시였다. 오늘날 전주가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비전을 여기서 찾아야 할 것이다. 허목(1595〜1682)이 쓴 『미수기언(眉叟記言)』에 전주는 강해의 도회이고 재화와 물자를 실어 나르는 길목(全州江海之都會 物貨之途)이라고 밝히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전주부 산천조를 보면 조수가 회포까지 들어왔다. 회포는 완주 삼례 회포대교(回浦大橋) 근처를 가리킨다. 바닷물이 7미터 정도 높이로 만경강을 따라 들어올 때에 중선배들도 회포까지 들어왔다. 전주의 진산인 성황산에서 바라보면, 회포까지 들어온 석양녁의 조수(潮水)가 바다처럼 보였다고 한다.

전주는 만경강 수로 중심의 강해도시이고 해항도시(海港都市)였다. 견훤대왕은 전주에서 만경강 수로를 이용해 중국 항주만의 오월국과 교역을 한 것이다. 만경강은 삼례의 한내를 지나 춘포(大場村)-목천포-화포-신창진-심포항을 거쳐서 서해의 바닷길과 연결된다. 신창진은 임피현의 나루터이며, 심포항은 만경강 하구 유역에 위치하고 있다. 중국에서 유학하던 경보스님이 921년 무역선을 타고 신창진으로 들어왔다. 만경강은 상인과 무역상들이 오고간 물화지도(物貨之途)였다.

송화섭 중앙대학교 교수는 후백제 도읍인 전주에서 오월국 도읍지인 항주로 향하는 출발지는 덕진 나루터나 금암동 거북바위 아래 ‘배멘데’ 나루터로 추정한다. 배멘데 나루터는 모래내시장에서 후백제 당시에 장시(場市)가 서고 물화 거래가 활성화되었음을 말해준다. 배멘데에서 회포까지 작은 돛단배를 타고 갔다면, 회포에서 좀 더 큰 중선배를 갈아타고 신창진(新倉津)까지 내려갔으며, 신창진에서는 사단항로를 따라 중국 항주만으로 떠났을 것이다.

물류중심도시 전주와 비교해 줄포만 검모포영은 후백제 수군의 병참기지였다. 줄포만의 해상교통은 신라 말 후백제 시대에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견훤대왕이 대중국 해상교통로와 영산강 유역의 왕건을 공격하기 위한 전략적 거점을 구축한 것이다. 고부의 고사부리성을 영주성(瀛州城)으로 수축하고 줄포만의 해상권을 장악했다. 신라 후기시대 고부군은 개화현, 보안현, 흥덕현을 속현으로 둘 정도로 큰 해항도시였다.

고지도를 보면 줄포만에 검모포, 제안포가 등장한다. 고려시대 13조창 가운데 하나인 안흥창이 줄포만에 있었다. 검모포는 현재의 구진(舊鎭)마을이다. 구진마을에는 검모포(黔毛浦) 진영이 있었고, 병선, 군선, 사후선 등을 제조하는 큰 조선소가 있었다. 검모포에서 건조한 군선과 전선이 영산강 유역에 투입되어 궁예정권과 수군전투를 벌였다. 줄포만에 조수가 들어오면 군선, 병선을 곧바로 출진시킬 수 있었다. 견훤대왕이 909년부터 914년까지 6년간 나주 영산강유역의 해상세력들과 수군전투를 벌일 수 있었던 것도 줄포만의 검모포에 수군진영을 두고 병선 건조, 병참보급 등 후방지원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후백제 시대에 안흥창, 검모포, 제안포는 줄포만 해상교통의 동력이었다. 고려시대 중엽에는 부안청자를 실어 나르고, 안흥창에서 조운선이 조세미를 실어 나르는 물류유통의 중심이었다. 후백제시기인 924년 정진대사 긍양이 중국에서 희안현 제안포로 들어온다. 견훤대왕이 고부의 영주성을 전략적 거점지로 조성한 것은 해상권을 장악하기 위한 것이다. 검모포영에서 병선, 군선을 건조해 영산강 유역 수군전투에 투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후백제시대 만경강 교통로가 국제적인 교역과 물화유통을 위한 수로 교통로였다면, 줄포만 교통로는 수군들의 군사작전과 해상교역을 위한 해상 교통로였다. 후백제가 한반도 서남해안의 해상권을 장악한 것은 918년 고려가 건국한 이후다. 고려는 북쪽으로 국경을 접하고 있는 거란과 외교적 갈등이 더 컸기 때문이다. 고려가 거란과 국경분쟁에 치중하던 시기에 견훤이 서남해 해역의 해상권을 손에 쥔 것이다. 918년에는 오월국에 사신과 함께 말을 실어 보냈고, 920년 이후 후당(後唐)에 사신을 보내고, 倭와 거란에게도 사신을 보냈다. 견훤대왕은 서남해안의 해상교통로를 장악하면서 대외교류를 활발하게 전개했다. 머지않은 미래 전북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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