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쑥밭이 되고 말았지만 우리나라도 예로부터 밀 농사를 짓는 밀 생산국이었다. 재배 역사도 기원전 2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안남도 대동군 미림리에서 발견된 밀의 연대가 그때쯤으로 추정된다. 남한에서도 경주 반월성지, 부여의 부소산 군창터 유적에서 밀이 나왔다. 우리 밀 농사는 4세기를 전후해 일본으로 전해졌다는 기록도 있다. 곳곳에서 나오는 밀알로 보아 밀 농사가 성행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밀은 전통적으로 북쪽에서 많이 재배됐다. 
  그러나 밀은 흔한 작물은 아니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모두 귀한 대접을 받았다. ‘고려도경’에는 ‘밀이 적어 화북지방에서 수입하고 밀가루 값이 매우 비싸 잔치 때 먹는다’고 쓰여있다. 또 조선조에도 밀가루를 진(眞)가루라고 부르며 귀한 식재료로 취급했다. 칼국수나 수제비가 양반가 손님상에 오르는 고급 음식이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근대로 오면서 밀 생산량이 늘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통계에 의하면 1933년 당시 우리나라 밀 수확량은 28만8천톤 가량으로 현재 밀 생산량 2만톤 내외에 비하면 아주 많은 양이다. 황해도와 평안남도, 경기도 지역이 주요 밀 생산지였다. 이렇게 밀 농사가 성행한 이유는 밀 소비가 많아진 것 외에도 일제의 조선총독부가 식량 확보 차원서 밀농사를 적극 권장한 것도 있었다. 
  그런데 해방과 한국전행을 겪으면서 밀 농사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값싸고 상대적으로 질이 좋은 외국산 밀이 대거 밀려들면서 국산 밀은 설 자리를 잃은 것이다. 또 정부 정책도 밀 생산에 타격을 가했다. 1984년 전두환 정권 때 밀 수매가 중단된 것도 밀을 경작하는 농가들이 두 손을 들게 된 결정적 요인이었다. 
  지금의 우리 밀 처지는 곤고하다. 국내 자급률은 1%대를 맴돈다. 여기저기서 우리 밀 살리기 운동을 펼치지만 아직 운동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식량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인도가 밀 수출을 금지하는 조치로 기름을 붓고 있다. 인도는 자국 작황이 좋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13일부터 밀 수출을 즉각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인도는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의 밀 생산국이다. 세계 곡물시장은 큰 충격을 받아 밀 가격이 하루 5%가 오르는 등 급등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식량 보호주의가 기승을 부리는데다 작황도 좋지 않아 당분간 밀 가격 급등세는 이어질 전망이다.
  다행히 국내 농가들이 밀 농사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밀 가격이 오르자 재배면적이 늘어나는 것이다. 정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설 타이밍이다. 수매 확대나 신품종 개발과 보급, 판로 개척 등 다양한 방안들을 제시해야 한다. 정부가 내세운 밀 자급률 10% 목표는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절박한 과제다.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