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식 국민연금공단
 생뚱맞은 질문을 해 보자. 꽃은 사람으로 본다면 어디에 해당할까? 다른 사람에게 질문을 해보면 얼굴, 손, 눈 등 대답이 다양하다. 정답은 생식기이다. 꽃은 왜 피는지를 생각해보자. 식물은 씨를 맺기 위해 꽃을 피운다. 다시 말해 꽃은 식물의 번식 목적이다. 인간에게 좋은 향기를,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주기 위해 꽃을 피우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식물들이 생식 과정을 다른 모습으로 즐길 뿐이다. 이처럼 같은 상황을 다른 관점에서 보면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기억에 남아있는 만화가 있다. 보물섬이다. 내용이 아니라 외다리 실버선장이 기억에 남아있다. 외다리 실버선장은 살인을 하고 남을 물건을 빼앗는 해적이다. 어린 시절 내게 실버선장은 나쁜 인간의 대명사이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 기억은 실버선장보다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로 새겨졌다. 사물에 대한 인식이 만들어지는 어린 시절이다. 어린 시절 나쁜 기억은 트라우마가 되어 평생 가기도 한다. 만화 보물섬은 외다리 실버선장을 통해 어린아이들에게 장애인에 대한 혐오감을 만들었다. 작가는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고 글을 써야 할 것이다.
 
 며칠 전 모임에서 낯선 제의를 받았다. 이름을 스스로 만들라는 것이다. 호적 이름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이름을 불러주겠다는 것이다. 회원들이 만든 이름이 다양했다. 여유롭게 살고 싶다고 자신의 첫 이름에 ‘여’자를 붙인 여정, 손자가 할아버지 발음이 되지 않아 하찌라고 부른다고 해서 하찌, 어린 시절 이름이 듣기 좋아서 끝순이, 이름이 좋다고 동백이라고 작명했다. 장난스러운 일 같지만  나름대로 멋이 있어 보였다. 나는 며칠 동안 고민을 했지만 마땅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주말에 유튜브를 보다가 박열이라는 독립운동가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개새끼로소이다.’라는 일본에 대한 저항시를 쓴 작가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분이 좋아 ‘열이’라고 정했다. 고유의 내 이름 대신에 내가 지은 이름으로 불리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지인에게 돈을 빌려준 적이 있다. 감당 못할 금액은 아니었지만 적은 금액은 아니었다. 급한 일이 있다며 여러차례 연락이 와서 어쩔 수 없이 빌려주게 되었다. 돈을 빌려 간 그와는 그리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직장에서 만나면 가끔 안부를 물을 정도였다. 며칠만 쓰고 주겠다고 했는데, 함흥차사였다. 언제 갚겠다는 말도 없었다. 그 뒤 서로 다른 지역에서 근무하고 있어 만나기도 어려웠다. 나는 전화해서 당장 돈을 달라고 하는 성격이 되지 못했다. 곧 주겠지라고 생각하며 마냥 기다렸다.
 
 몇 달이 지났지만, 돈을 받지 못했다. 그에게 빌려준 돈이 여윳돈이 아니라 은행에서 대출해서 빌려주었다. 내가 갚아야 하는 이자가 문제가 아니라 혹시 받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으로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직장동료에게 돈을 빌려 간 직원을 생각해보았다. 무슨 사연이 있겠지. 오죽하면 잘 알지도 못하는 내게 그랬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에 독촉하지 않고 그냥 지냈다. 그러다가 6개월쯤 지났을 무렵 빌려 간 돈을 입금했다며 늦게 갚아서 미안하다는 문자를 받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형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조카 2명을 부양하고 있었다. 조카들이 대학에 다니고 있는데 학비가 부족해서 돈을 빌렸다고 한다. 요즘이야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은 국가장학금이 있어 학비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그때에는 그러지 못했다. 그 후 그와 서로 다른 지역에 살고 있어 가까운 친분은 쌓지 못했지만 지금도 그에게는 나쁜 감정은 없다.
 
 누구나 눈에 보이는 데로 자신의 방식대로 생각하고 판단한다. 그런 판단은 오류를 낳는다. 누군가와 의견이 대립하여 갈등이 있을 때 자기 눈이 아니라 상대의 눈으로 한번 보자. 다르게 생각해보자. 해결 방법이 있을 것이다. 가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바라보면 분명 다른 세상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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