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이탈리아와 비교되는 동아지중해의 해양강국이다. 실제로 새만금 변산반도 일대에서는 이를 확인해주는 유물과 유적, 풍습 등이 즐비하다. 12월 14일 새만금 앞 바다인 군산시 선유도 등 고군산도 해역에서 난파선 추정물과 고려청자 125점을 포함한 유물 200여 점이 확인됐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옥도면 무녀도, 선유도, 신시도 등지에서 60여 일간 수중탐사를 실시해 바다 속 지표면에서만 고려청자 125점, 분청사기 9점, 백자 49점, 닻돌(물에 잘 가라앉도록 나무닻 몸통에 묶는 돌) 3점 등 유물 200여 점을 발견했다. 조난의 슬픈 역사이지만 변산반도 일대가 해상교통의 최고 요충지임을 입증하고 있다. 

백제시대, 신라시대.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서해연안을 지나가는 선박은 새만금 변산반도를 경유했다. 송나라 사신 서긍이 1123년 고려를 방문했을 때 견문을 적은 여행보고서인 『선화봉사고려도경』에 따르면 선유도는 고려로 오는 사신이 묵는 객관인 군산정이 있던 곳으로 과거에 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선박들 중간 기착지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변산반도와 위도 사이를 서해의 해문(海門)으로 불렀다.  1872년 만경현에서 제작한 『고군산도 지도』에서도 이 해역을 조운선을 비롯해 바람을 피하거나 바람을 기다리는 선박들이 머무는 곳이라고 기록했다. 그래서 격포와 위도 등에 수군이 주둔하는 진을 두었다.

『대동지지』는 위도에서 배를 띄우면 1주일 만에 중국 항주에 도착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위도 치도리는 범선이 접안하기 좋은 포구이며, 대리는 범선이 출항하기 좋은 포구이다. 이곳은 범선이 바람을 기다렸다가 계절풍을 이용해 출항하기에 좋은 곳이다. ‘순풍에 돛단 듯이’라는 말처럼 위도를 비롯해 고군산도, 변산반도 새만금 일대는 국내 뿐 아니라 국제 해상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고대에 아랍상인, 이슬람상인, 인도상인들이 ‘동쪽의 해 뜨는 나라’를 향해 거침없이 항해했다. 국제상단은 중국의 남해안 광주, 천주, 복주, 명주 등을 경유했다. 최종 기착지는 백제와 신라, 고려였다.  

해상교통로는 바닷물의 흐름이 순류이어서 해상고속도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위험하고 불안한 것은 떨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해상교통의 안전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항해보호신인 백의관음보살을 절대적으로 신봉하게 됐다. 관음보살 신앙은 남인도의 포탈락카(Potalaka)에서 비롯됐다. 불교의 관음보살과 힌두교의 비슈누가 결합해 남해관음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남해관음은 인도 남해에서 한반도 서남해로 이어지는 동아시아 남해로의 항해 보호신으로 섬겨지게 됐다. 남인도 남해의 포탈락카, 중국 주산군도의 보타낙가산, 한반도의 변산반도 죽막동 해변굴이 남해관음 신앙의 국제적 중심지이다.   
  
‘부안 죽막동 유적(扶安 竹幕洞 遺蹟)’은 해양의 기운을 품고 있는 해변굴과 관음죽 등 천연의 조건을 갖추고 있어서 2017년 사적 제541호로 지정됐다. 죽막동 관음굴 유적은 동아지중해의 중요한 길목으로 고대부터 지금까지 뱃길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해양제사가 행해져 오고 있다. 이곳에서는 3세기 후반에서 7세기 전반 백제, 가야, 중국, 일본 등에서 사용된 제사용 토기, 금속유물, 도자기 등이 출토돼 동아시아 최대 해양제사유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금도 풍어를 기원하는 용왕제가 이뤄지고 있다. 백의관음보살의 화신인 개양할미와 그의 여덟 딸을 모신 수성당이 위치하고 있어 과거부터 현재까지 해양제사유적의 성격을 간직하고 있다. 

위도 치도리 원당에서는 임경업 장군이 당신(堂神)으로 모셔지고, 대리 원당에서는 원당부인령대신을 당신으로 모시고 있다. 원당마누라의 화상(?像)은 백의관음보살상이다. 백의관음보살은 동아지중해의 중심지로 떠오르는 새만금의 수호신이다. 이 수호신은 해상교통의 안전과 새만금 전라북도의 번성을 실현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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