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에 자주 등장하는 ‘붉은 여왕 가설’이라는 게 있다. 그 유래는 루이스 캐럴의 소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붉은 여왕이 앨리스에게 한 말이다. 앨리스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열심히 뛰어도 제자리에 서 있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 여기며 여왕에게 그 이유를 묻는다. 그러자 여왕은 “우리나라에서는 제자리에 있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뛰어야 한다”고 대답한다. 즉 무엇 하나가 움직이면 주변 것들도 같이 움직이기 때문에 이동을 위해서는 남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어떤 대상이 변화하려 해도 주변 환경과 경쟁 대상 역시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뒤처지거나 제자리에 머무는 현상으로 풀이한다. 자연계에서 생명체들은 이렇게 쫓고 쫓기며 평형을 유지한다.

인간과 바이러스에도 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모든 생명체는 질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능력을 갖는 세포나 기관을 날 때부터 보유한다. 인간은 다른 유악류(턱뼈가 있는 척추동물)과 함께 후천적인 면역체계도 갖추고 있다. 후천적 면역체계는 바이러스 등 병원체가 몸으로 침투하면 항체를 형성해 이를 무력화한다. 백신은 이 원리를 활용한 것이다. 후천 면역체계에서 직접 바이러스를 파괴하는 역할을 맡는 것은 세포독성 T세포다. 일종의 킬러 세포인 셈이다.

물론 바이러스도 가만히 있지는 않는다. 돌연변이를 일으켜 인간의 면역체계를 회피하고자 한다. 그래서 인간과 바이러스는 서로 쫓기고 쫓기며 자연계의 평형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붉은 여왕 가설의 요체다.

영국 제약회사 이머지 엑스가 최근 T세포 백신 방식의 코로나19백신을 개발해 임상시험을 앞두고 있다고 영국 언론이 전했다. 이 백신은 내년 1월 스위스 로잔에서 임상실험에 돌입하는데 그 효과가 수십년 지속되며 돌연변이에 강하다는 강점을 갖고 있다고 한다. 또 보관이 쉽고 패치방식이어서 접종도 편리하다는 설명이다. 다만 이 백신이 사용가능한 시기는 빨라야 2025년 정도라고 한다.

붉은 여왕 가설에 따른다면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인간은 바이러스보다 빨리 뛰어서 이를 퇴치할 새 방법을 찾은 듯하다. 아직 결과는 더 두고 보아야 하지만 앞으로 더 많은 예방과 치료방법이 나올 게 분명하다. 바이러스 역시 생존을 위한 돌연변이를 통해 또 도망칠 것이다. 이래저래 인간과 질병 사이의 치열한 싸움은 결코 끝나지 않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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