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 물러 누운 어둑어둑한 산, 앞으로 폭이 넓게 흐르는 검은 강물, 산마루로 들판으로 검은 강물 위로 모두 쏟아져 내릴 듯한 파아란 별들. 바야흐로 숨이 고비에 찬, 이슥한 밤중이다. 강가 모랫벌에 큰 차일을 치고, 차일 속엔 마을 여인들이 자욱이 앉아 무당의 시나위 가락에 취해 있다. 무당은 바야흐로 청승에 자지러져 뼈도 살도 없는 혼령으로 화한 듯 가벼이 쾌잣자락을 날리며 돌아간다…”

김동리가 쓴 단편소설 ‘무녀도’의 첫 대목이다.
이 소설은 1930년대 경주를 배경으로 무당 모화와 그의 아들 욱이 사이에 벌어진 비극적 이야기를 다룬다. 모화는 집 나갔던 아들 욱이가 기독교 신자가 돼 돌아오자 용납하지 못하고 갈등한다. 서로 다른 종교관 때문에 부딪치던 두 사람은 대결 구도를 이어가다가 결국 모화가 욱이를 칼로 찌르는 사태로까지 간다. 욱이가 죽자 모화는 마지막 굿판을 벌인 뒤 물속으로 잠긴다. 그 와중에 마을에는 교회가 세워지고 신도들이 늘어난다. 이 광경을 지켜본 딸 낭이는 아버지 손에 이끌려 방랑의 길을 나서고 타고난 재능으로 사람들에게 그림을 그려주며 목숨을 잇는다.

얼핏 이 작품은 토속 종교인 무교가 신종교인 기독교에 패배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모화의 마지막 굿판에서 보듯 승리와 패배의 문제가 아니다. 자기 세계를 지키려는 한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을 견고한 서사를 통해 형상화 했다는 평가다. 이 작품이 후일 노벨문학상 후보로 선정된 것만 보아도 높은 예술성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이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 했다. 한국 고유 정서를 세계에 각인시키고 있는 안재훈 감독이 무녀도를 뮤지컬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곧 국내 극장에 선보인다고 한다. 이 작품은 작년 프랑스 안시 국제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평론가들은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어울린 수작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요즘 K-컬쳐가 지구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BTS의 음악과 드라마 ‘오징어’, 영화 ‘기생충’ 등등이 문화시장을 흔드는 중이다. 1990년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구호가 유행한 적이 있다. 그 말이 딱 들어맞는 형국이다. 무녀도의 애니메이션 영화화는 또 한 번의 전통문화 세계화 성공사례가 될 수 있다. 무교를 살리자는 뜻이 아니다. 우리의 전통적 가치도 열린 예술 감성으로 잘 감싸면 전 세계인이 공감하는 가치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위드 코로나 시대이니 영화관에 한 번 나들이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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