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자 달항아리, 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한국의 종이, ‘한지(韓紙)’가 현대미술과 만나 새로운 예술 작품으로 탄생했다. 

전북도립미술관(관장 김은영)은 ‘달빛연가 : 한지워크와 현대미술’ 특별전을 선보이고 있다. 

2021 전북도립미술관 특별전으로 마련한 이번 전시에선 한국을 중심으로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한지와 종이 매체를 다루는 작가 30명이 각자 고유한 방법으로 한지를 응용해 작품 122점을 소개한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17호 한지장 기능보유자 홍춘수,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60호 색지장 김혜미자, 여성의 일생을 육아·여성으로서의 삶·죽음 3단계로 해석한 키키 스미스, 한지공예에 대한 실험적 시도와 새로운 가치를 꾸준히 찾아가는 유봉희, 지승공예 명인 신계원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와 작품이 한자리에 모였다. 

작품은 크게 ‘전통과 현대의 만남’, ‘물성과 본질의 탐색’, ‘시대성과 현실에 관한 사색’, ‘조형적 탐구와 표현’으로 나눠 전시된다.

‘전통과 현대의 만남’ 전시장에선 한지의 물성을 부조형태로 극대화시켜 흠집 내고 그 위에 한지를 20겹 두들기고 밟아 쌓아 올린 한기주의 작품부터, 다양한 농도와 채도로 염색한 오브제 집합체를 만든 전광영 작품까지 한지의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현존성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다.

지·필·묵이 시·서·화 일체라는 사상의 토대가 되어 왔듯이 한지가 역사와 문화, 삶의 형태 속에서 사상과 정신의 골격을 이뤄왔음을 보여준다. 

한지라는 매체가 가진 근원적 특성을 조명하는 ‘물성과 본질의 탄생’ 전시장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18세기 도자기 ‘백자 달항아리’를 만나볼 수 있다. 

전북 고창 출신의 박동삼이 빚어낸 ‘The Hand’ 작품은 무수히 많은 선들의 집합체가 반추상 표현의 독특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한지를 매체로 한 현대미술의 표현 경향 중 형상성과 개념성이 담긴 작품을 조명한 ‘시대성과 현실에 관한 사색’ 전시장은 오늘날 현대미술계 특히 한국이나 아시아권의 작가들이 한지를 어떻게 표현해내는지 감상할 수 있다. 

85년생의 젊은 작가 최현석의 ‘신기루 매란국죽’은 관객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작품이다.

특수물감으로 그려 헤어드라이기로 말렸을 때 사라지는 현상이 나타나 신비감을 준다.

과거 선비문화의 수양덕목이 한지라는 바탕에 변함없이 계승되고 있지만, 특수안료와 헤어드라이라는 현대적 도구가 개입되면서 시간성이라는 문제가 ‘소멸과 생성’이라는 새로운 사유로 전환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한지가 가진 천년의 생명력과 예술적 표현매체로서의 가능성 등을 특징으로 하는 ‘조형적 탐구와 표현’ 전시장에는 노동집약적인 작품들이 눈에 띈다. 

전통 한지의 줌치 공예기법을 콜라주, 아상블라주 등 현대적 표현으로 재해석한 유봉희 ‘나, 너, 우리’ 작품을 비롯해 무수한 노동으로 점철된 108개의 작품이 인상적이다. 

유정혜 ‘달빛 흐르는 길’은 닥이 남아 있는 한지를 여섯 종류의 다른 사이즈로 자르고, 농담과 중첩이 생기게 두 번 염색했다. 28개의 다른 사이즈와 다른 색의 원을 한 줄에 매달아 1026개로 하나의 숲을 이룬다. 

특별코너로 마련된 ‘한지문화와 홍춘수’ 전시장도 흥미롭다.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117호 한지장 홍춘수 장인의 단편적인 역사를 볼 수 있다. 

도립미술관 관계자는 “한지의 고유한 물성과 천년을 견디는 물리적 특성을 살펴보면서 한지가 지닌 실용가치와 예술적 표현 매체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조명하고자 마련한 전시”라며 “국내·외 현대미술가들이 창출한 회화, 수묵화, 한지 조각, 한지 판화, 사진 등의 작품을 망라해 전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2022년 2월 27일까지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박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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