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에서 침술은 가장 중요한 치료법이다. 2200년 전으로 추정되는 중국 전통의학서 ‘황제내경’에는 침에 대한 공식적 언급이 있다. 이 문헌에 의하면 침은 동방과 남방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당시 동방은 중국 쪽에서는 산동이라 주장하고 우리나라 학자들은 고조선 지역으로 비정하는 등 맞서 있다. 어쨌든 동방은 소금과 물고기가 많이 나는 지역이어서 종기와 유사한 병이 많아 돌침으로 치료했다는 해석이다.

황제내경에 나오는 경락학은 침술의 근본원리다. 인체의 각 부분은 경락이라는 어떤 체계적인 선에 의해 연결돼 있으며 이는 상호작용하고 반응한다는 것이 경락학설이다. 침술은 이 경락을 알아내고 혈의 위치를 선정, 자극함으로써 병을 치료한다.

황제내경은 병에 걸린 것이 귀신의 작용이라는 원시적이고 무속적인 믿음을 벗어났다는 데 의미가 있다. 즉 병이 야기되는 것은 식사 등 생활 습관이나 감정, 환경의 영향이라는 게 그 요체다. 음양오행과 기(氣) 등 우주 운행의 기본 원리는 인간에게도 적용된다. 소우주인 인간에게도 그런 원리가 적용되는 만큼 여기에 맞춰 침이나 뜸, 약 등을 쓰면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런 삶에 대한 통합적 접근 시각은 심신의학이라는 이름으로 오늘날 지속 가능하고 혁신적인 의술로 재탄생하고 있다.

침술은 이후 여러 곳으로 퍼져나갔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 베트남 등 아시아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시술됐다. 또 현대의 침술은 유럽이나 미국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침술 마취나 통증 해소 등 분야는 서양의학에서도 침술의 가치를 인정하는 상황이다. 서양의학의 단점을 보충하는 대체 의학 내지 제3의 의학이라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최근 과학 저널 네이처지는 최근 침술의 신경해부학적 메카니즘을 규명한 하버드 의대 마추푸 교수 연구팀의 논문을 게재했다. 연구팀은 생쥐 실험을 통해 침술 시술로 염증을 치료할 때 작용하는 신경세포 그룹을 발견했다. 침을 놓으면 이 신경세포 그룹이 활성화 되면서 염증이 완화된다는 것이다. 이로써 경혈의 신경해부학적 기초가 확인된 셈이다.

침술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서양의학 쪽에서는 침술을 아예 무시하는 편이다. 경락이니 기니 하는 것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시한다. 그렇지만 실제 임상에서 침술은 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현대의학 관점에서 침술을 해석하기 위한 독자적 노력이 거의 없었다. 침술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한국으로서도 이 분야에 더 많은 이론적 연구를 할 필요가 있다.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