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읍시립미술관 이흥재 명예관장

이흥재(67) 정읍시립미술관 명예관장은 분홍색 줄무늬 셔츠에 갈색 재킷을 걸치고 약속장소에 나타났다. 한 손에는 베이지색 트렌치코트(trench coat)가 들려 있었다. 25일 전주한옥마을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에게 인사하러 다가서자 바람을 타고 스킨 냄새가 났다. 멋쟁이였다. 

이흥재 명예관장은 12월까지 정읍시립미술관에서 진행되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특별전 ‘한국미술의 아름다운 순간들’ 전시 홍보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미술관은 어렵다’라는 인식을 깨부수고,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유명 작가의 예술작품을 친숙하게 감상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미 지난 2019년 ‘100년의 기다림-한국근현대명화전’과 올 초 ‘피카소와 동시대 화가’ 특별 기획전시를 선보이며 지역 안팎에서 정읍시립미술관의 전시는 ‘볼만한 전시’로 통하게 됐다. 특히 ‘피카소와 동시대 화가’ 전시의 경우, 코로나19로 침체된 지역 미술관에 훈풍을 몰고 왔다. 

“사람들이 미술관을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방법이 무엇일까 오랫동안 고민했어요. 좋은 전시를 기획해 좋은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는 것. 그게 최선이자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이흥재 관장이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특별전 ‘한국미술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추진하게 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 화가의 작품, 미술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전시하게 된다면 미술관 방문이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지역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을 접할 기회도 극히 드물어 더욱 적극적으로 준비했다. 

“개인적으로 저는 예술을 감상하고 누릴 때는 최고수준의 음악, 최고수준의 미술을 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이게 최고의 작품인가?’ 하는 의문을 품을 수 있지만, 나중에 다른 전시를 관람하게 됐을 때, ‘그때 봤던 전시가 최고수준의 예술이었구나’를 깨닫게 되거든요. 그게 문화예술을 향유 하는 방법 중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봐요”

이 관장은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다. 전북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그는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다. 단순히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에 카메라를 찾게 됐고, 전주 동문예술거리 막걸리 집에서 미술인들을 만나 자연스럽게 작품 전시까지 하게 됐다. 

‘작가’ 타이틀을 달고 전시회를 열었지만, 이 관장은 스스로가 매우 부족한 예술가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전주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에서 미술을 배웠고,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불교사학과에서 예술사를 공부했다. 이후 동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수학을 마친 뒤 다수의 기획초대전을 통해 여러 작품을 선보였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끝없이 도전하는 그에게는 작은 꿈이 있다. 미술과 미술관에 대한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이다. 이러한 관심이 이어진다면 훗날 정읍이 ‘내장산’, ‘단풍’, ‘동학’의 도시로만 기억되는 게 아닌, ‘미술’과 ‘예술’의 도시로 인식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12월 12일 한국미술의 아름다운 순간들 전시가 마무리되면 내년 선보일 전시 기획에 들어갈 예정이다. 

“구체화된 건 없지만 이르면 내년 하반기쯤에는 새로운 전시를 선보일 수 있을 것 같아요. 현재 코로나19로 해외를 나갈 수 없는 상황인 만큼, 해외 걸작 전시가 이뤄질 수도 있고, 정읍과 관련된 동학을 미술로 풀어낸 전시회가 될 수도 있어요. 또 우리나라 근현대기 최고의 초상화가 채용신 기획전도 염두에 두고 있어요. 여러 방면으로 고민하고 있죠. 최선을 다해 준비한다면 정읍시립미술관과 미술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계속될 거라고 믿어요."/박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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