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를 흔히 재벌 공화국이라고 부른다. 재벌이란 말은 영어 사전에 오를 정도로 특이한 함의를 갖고 있다. 원래는 일본말이지만 우리나라로 와서는 그 의미가 많이 달라졌다. 한국 재벌의 사전적 의미는 총수나 그 가족이 지배하는 기업을 말한다. 그간 한국경제에 긍정적 역할도 했고 부정적 영향도 미쳤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재벌의 이미지는 음침하고 탐욕스럽다는 것이다.

재벌의 민낯이 드러나는 결정적 계기는 1990년대 외환위기 때다. 황제 경영, 독과점 구조 고착, 특혜와 로비, 무자비한 영토 확장 등 재벌이 가진 부정적 측면이 도드라졌다. 결국 대마불사라는 신화는 무너지고 대마몰살의 사태를 빚었다.

재벌의 특성 중 하나는 문어발식 확장이다. 왕성한 식욕으로 주변 기업들을 삼키는 것으로  오로지 이윤만 추구하는 행태다. 물론 경영 다각화라는 이론적 근거를 댈 수 있다. 기업의 활동 범위를 타 업종으로 넓혀 수익성을 높이고 리스크를 분산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렇지만 실제 행태는 그와 거리가 멀다. 중소기업들이 맡아야할 곳까지 마구잡이로 진출해 우리 경제의 기초를 약하게 만들었다.

외환위기 이후 재벌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정책적인 노력도 없지 않았다. 출자 총액제한제나 업종 전문화, 일감 몰아주기 규제 등이 시행됐다. 그러나 오늘의 재벌 현주소는 과거와 크게 다름이 없다. 10대 그룹의 자산은 국내 GDP의 87%를 차지한다.  100대 기업의 수출비중도 60%대를 훌쩍 넘는다.

최근 재벌로 성장한 카카오가 정치권과 정부로부터 공격을 당하고 있다. 카카오 계열사는 총 128개로 SK그룹 다음으로 많다. 그런데 골목 상권을 짓밟는 게 문제가 됐다. 꽃 배달에서부터 영어교육, 실내 골프, 대리운전, 퀵 서비스 등까지 카카오는 과거 재벌 뺨치는 식탐을 과시했다. 이에 국회 국정감사에 불려나온 카카오 김범수 의장은 ‘송구’하다며 이런 업종서 철수를 시작했다고 답했다.

과거 재벌 대신 카카오나 네이버가 문어발 경영을 통한 몸집 불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이러다가는 재벌 공화국이 아니라 플랫폼 기업 공화국이 될 지경이다. 시민들의 일상이 플랫폼에 의해 지배받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쯤에서 강도 높은 규제가 필요하다. ‘혁신 아이콘’에서 ‘공공의 적’이 된 카카오를 보며 새삼 자본의 무한 증식 본능에 무서운 생각이 든다.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