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탈리아 대법원은 세계의 주목을 끄는 판결을 내렸다. 요지는 부모가 성년이 된 자녀를 재정적으로 부양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소송을 제기한 35세 남성은 시간제 음악강사로 일하는데 수입이 생활을 꾸리기에 충분치 않다며 부모에게 재정적 지원을 요구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신체 또는 정신적 장애를 가진 자녀는 법적 보호를 받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부모의 재정적 지원은 무한정 이어질 수 없다”며 원고에게 ‘자립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캥거루족이라는 용어는 학교를 졸업하고 자립할 나이가 됐음에도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해 사는 젊은이들을 뜻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신캥거루족도 있다. 이들은 취업 여부와 상관없이 결혼을 했지만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해 부모와 함께 산다. 이탈리아 대법원이 자립하라고 훈계한 35세 남성은 전형적인 캥거루족인 셈이다.

캥거루족은 전 지구적인 사회문제다. 일본에서는 ‘기생 독신’ 혹은 ‘프리터’라고 부르는가 하면 영국에서는 부모 연금 축내는 ‘키퍼스’, 미국에서는 낀 세대라는 뜻에서 ‘트윅스터’, 독일에서는 둥지를 떠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네스트호커’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그러니까 세계 각국이 부모에 얹혀사는 젊은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통계청이 밝힌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보면 국내 성인의 7.5%인 314만 명이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는 캥거루족으로 나타났다. 연령별로 부모 도움을 받는 비율은 20대가 38.9%로 가장 높았고 30대는 7.0%, 40대도 2.2%로 그 뒤를 이었다.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라고 할 것이다. 원인을 놓고 보면 주택난을 비롯 경기 불황, 고용 불안, 육아 문제 등 다양하다. 결국 경제난이다. 부작용도 크다. 부모들은 실버 푸어를 걱정해야 한다. 실제로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40%를 훌쩍 넘겨 OECD 1위다. 자칫 범죄로 이어지는 가정불화도 걱정해야 한다. 이렇게 근본적인 문제에 부딪치다 보니 해결책도 쉽지 않다. 우선 당장 학교 교육에서 경제적 자립 의식을 키우고 직업 교육 등 실용적인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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