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상철 참교육희망포럼 상임대표

농어촌 작은 학교를 통폐합해야 한다는 주장이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지역 소멸이라는 대위기에 처한 농어촌의 현실과 작은 학교의 특수성을 도외시한 채 교육을 경제논리로 재단하려 들고 있다. 과거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작은 학교의 교육적 취약성을 명분으로 적정규모 학교를 만드는 통폐합을 추진했었는데, 학생 1인당 교육비 차이라는 경제논리가 밑바탕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도 박근혜 정부 시절 강압적 통폐합을 위해 만든 학교총량제를 들먹이며 농촌학교 하나 없애서 도시학교 하나 만든다는 위험한 논리를 펼치는 분이 등장했다. 공론화위원회를 통한 의견 수렴과 지역의 자율성을 강조한다고 했지만 이미 통폐합 의도를 표명한 이상 지역의 의견수렴과 자율성은 허울에 그칠 것이다. 지역의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것도 특별한 아이디어기 아니다. 인위적 통폐합을 반대하고 있는 전북교육청조차 지역 내 자율적인 통폐합은 인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농어촌 학교의 가치는 도시의 관점이 아니라 농어촌의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 농어촌학교는 지역소멸을 막는 최후의 보루이다. 도시학교가 아무리 급하다고 경제논리로 농촌 최후의 보루를 허물어서야 되겠는가? 그걸 농촌학교와 도시학교의 상생이라고 표현하다니. 

지금 농어촌을 살리기 위해 범정부차원에서 연간 수조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그런데 이명박근혜 시대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불과 몇십억원 아끼자고 통폐합을 추진하는 것은 오히려 국가 전체 차원에서 봤을 때도 비효율 아니겠는가? 지역교육이 농어촌 살리기는 모른 체해도 되는가?

농어촌 소규모학교 통폐합은 서두를 일이 절대 아니다. 시급한 것은 도심 개발지역에 위치한 대규모 과밀학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일상화 될 지도 모르는 팬데믹에 대비하여 대면 수업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 만큼 적정규모로 줄이는 것이 더 시급하다.

올해 도내 초등학교 중 60학급이 넘는 학교가 2교나 있고, 학생 수 1,000명이 넘는 학교도 11교나 된다. 중·고등학교의 경우 30학급 이상 학교가 12교나 있고, 학생 수 600명이 넘는 학교도 61교나 된다. 전면 등교를 하는 상황에서도 학생 수가 너무 많아 교차등교를 해야 하는 학교가 있고, 좁은 학교 부지 안에 수십 학급이 밀집되다 보니 공간 자체가 비민주적이고, 비교육적일 수밖에 없는 학교도 많다.
도시의 대규모 과밀학교가 농어촌 작은 학교보다 오히려 교육적으로 더 취약하다고 볼 수 있다.

학교폭력이 더 많고, 제대로 된 생활지도가 어려우며, 교사가 학생 개개인을 다 이해하고 특성에 맞게 지도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런 학교는 작은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개별화 수업을 꿈도 못 꾸는 실정이다. 권위적 분위기가 풍기는 학교 공간을 학생들이 참여해서 민주적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이른바 민주적 학교공간 혁신이 최근 교육계의 화두이지만 공간 자체가 부족한 과밀학교에게는 그림의 떡으로 남을 가능성도 높다. 

우리나라 학생 수가 감소하고 있다지만 도시의 과밀학교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OECD 선진국들은 현재 학급당 학생 수가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낮추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학생 수가 감소한다 하여 교육재정 규모를 축소하기 보다는 오히려 학생 수 감소를 좋은 기회로 삼아 대규모 과밀학교를 적정규모 학교로 나누고, 학급당 학생 수를 OECD 선진국 수준인 20명 내외로 낮추려는 적극적 시도가 필요하다. 

적정규모라는 용어는 작은 학교 통폐합에만 쓰이는 전유물이 아니다. 지금은 대규모 과밀학교를 어떻게 적정규모로 줄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앞서야 할 때이다.
통폐합과 관계없이 도시학교를 이전 배치해서 과밀을 해결할 수 있다. 통학군 조정을 통해 학생을 분산 배치하는 방식도 있다. 지자체와 적극적 연계협력을 통해 학교 부지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교육자치시대, 교육분권의 시대이다. 우리 전북교육이 박근혜 시대의 잘못된 정책에 끌려 다니기만 해서야 되겠는가? 농어촌 학교를 폐교하지 않고도 도시에 학교를 신설하는 것, 그것이 지역과 교육의 상생을 추구해야 할 주민직선 교육감이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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