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먹는 건 신경 안 써도 이놈 튀겨서 손주는 먹여주려고 나왔지”,

오는 주말 추석 연휴를 앞두고 마지막 장날을 맞은 고산장에는 손님들의 발길이 꾸준했다. 이전처럼 거리를 가득 메운 장날 인파의 모습은 볼 수 없어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얼굴 표정만큼은 ‘고향의 정’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14일 오전 찾은 고산장. 곧 다가올 추석 명절과 김장철을 염두에 둔 듯 바짝 마른 고추 포대가 길가를 따라 가득 세워져 있었다. 생선을 싣고 온 트럭 옆으로는 차양막을 치는 손길이 분주했다. 나이 든 상인들은 조글조글 주름진 손으로 챙겨 온 푸성귀를 차곡차곡 풀어놓은 뒤 앉아 손님이 오기를 기다렸다.

운주에서부터 직접 딴 밤을 챙겨 나왔다는 A할머니(80대)는 “곧 추석이니 이것 팔고 애들 뭐라도 해줄 겸 나온 것”이라며 짐 쌓인 손수레를 톡톡 두드렸다.

인파로 북적이진 않아도 명절은 명절. 장날을 기다려 이곳을 찾은 ‘튀밥’ 트럭 앞에는 노인 몇이 제각기 챙겨 온 옥수수 한 소쿠리씩을 내려놓은 채 순번을 기다리고 있었다.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기계가 ‘뻥’ 터질 때마다 옹기종기 모인 노인들 사이로 웃음소리가 번졌다.

이날 이곳을 찾은 B할머니(80대)는 “이번에 손자가 온다길래 이놈 튀겨서 손자 줄라고 일부러 챙겨온 것”이라며 “자식은 모르겠는데 손자는 입에 뭐가 들어가는 건만 봐도 흐뭇하다”고 웃음을 지었다.

기름집 앞에는 명절이 오기 전 미리서부터 기름을 짜러 나온 손님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두런두런 수다를 떠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들은 ‘건강 안부’, ‘자녀·손주 자랑’ 등을 늘어 놨다.

이런 한편으로는 예전과 같지 않은 장날 모습을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곳에서 10년 이상 장사를 해왔다는 한 상인은 “예전에는 ‘명절이 왔다’하면 이곳에 인파가 몰려 파도처럼 넘실거렸다”며 “지금 규모는 대폭 줄어든 것이고, 오늘만 해도 옛날 같았으면 여기서 자리를 잡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우시장도 없어지고 국밥먹는 사람들도 사라지고, 이제 그만큼 큰 장은 추억 속에만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날 만난 C할머니(90대)도 “예전에는 지금에 비할 바 없이 장이 컸었다”며 “옛날 시장은 이제 싹 사라졌고 여기에만 남아있는데, 점점 오는 사람들이 줄어드니 그만큼 시장 크기도 줄어든 것 같다, 예전처럼 시끌벅적한 명절 분위기는 이제 없는 것 같다”며 아쉬운 목소리를 전했다./김수현 기자·ryud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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