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항근 교육자치연구소 상임대표(전 전주교육장)

지난 5월 진보교육연구소에서 전국 고등학교 교사 1,138명을 대상으로 고교학점제 관련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교사 전체의 48.9%가 고교학점제 시행 계획 추진 중단, 37.9%가 시행 시기 연기 등 86.8%가 교육부 시행 계획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교사들은 고교학점제를 반대하는 이유로 ▲기초지식을 배울 필수단위 축소 ▲시간강사와 무자격 교사 양산 ▲입시 중심 과목 쏠림 우려 ▲지역 간 격차 등의 문제를 꼽았다.

학생들이 배우고 싶은 과목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입시 중심 과목으로 쏠리는 문제는 이미 수능 중심 입시와 내신 상대평가 상황에서 상위권 학생의 유불리를 우려하는 입시 중심 교육과정 편성의 결과로 이미 지난 수년간 고등학교를 황폐화시켜온 문제이지 고교학점제의 문제가 아니다. 한편으로 다양한 과목을 개설하여 학생들의 선택권을 강화하고 즐겁게 배우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역에서 전문성을 지닌 마을교사들에게 학교의 문을 열 수 밖에 없는데 입시 중심 과목 쏠림 현상에 따른 학교 교육과정의 획일화를 염려하면서 시간강사와 무자격 교사 양산을 걱정하는 것은 상호 모순이아닐까?
전북형 고교학점제는 이런 문제의식을 해결하기 위해, 학생들이 요구하는 진로, 다양한 주제와 관련된 과목을 개설하고 이를 교육지원청이 적극 지원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소규모 학교 비율이 높은 지역 특성을 반영하여 공동캠퍼스 운영, 청소년 자치 배움터의 적극적 활용 등을 지원청이 중심이 되어 지역에 배움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추진해 나가야 한다.

진로 선택 교과목의 증가로 인한 ▲기초지식을 배울 필수단위 축소 편성에 대한 우려는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전체 이수 단위가 204단위에서 192단위로 감축 편성된다는 점에서 고교학점제로 인한 필수단위 축소의 문제는 아니다. 다만, 1학년 공통 교육과정의 학기제 혹은 단위별 세분화된 기초 교과목 운영을 통한 기본학력 미달 학생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은 꼭 필요하다고 보여진다.

고교학점제와 관계없이 우려되는 문제가 ▲지역 간 격차 확대이다. 현행 입시 체제에서도 지역간 학력 격차가 커지고 있다. 앞으로 지역 학생의 지속적 감소와 열악한 교육 환경, 성취도 평가 시행 등으로 지방 학교의 소외 문제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고교학점제 실시는 지역 공동체간의 공동캠퍼스 운영, 지역별로 특화된 교육과정 편성 운영 등을 통해 이러한 격차를 완화시킬 수는 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창조적인 대안이 될 수도 있다. 아니, 그런 방향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더 이상 수능중심의 현 입시체제를 바꾸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하지는 말자. 학교에 따라 상황이 다르겠지만 현재 고교 재학생 가운데 실제 대학 입시에 수능 과목이 필요한 학생은 대부분 50% 미만이다. 이 학생들을 성실히 지도하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입시 중심 교육과정에서 배제된 50% 학생을 위한 교육과정 또한 놓쳐서는 안되는 부분이다. 이 학생들에게 교과목 선택권을 부여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 또한 공교육이 해야 할 막중한 소임임이 분명하지 않은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교육과정에서 고통받는 학생들에게 미래의 진로와 적성을 위한 설계와 학습의 즐거움을 느끼게 주는 것이 차별 없는 미래 교육의 첫발이어야 한다. 고교학점제에 대한 찬반의 입장과 관계없이 교육을 고민하는 누구나 이에 동의할 것이다. 이 첫발을 떼기 위해 어른으로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제 우리는 답을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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