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잠잠했던 젠더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도쿄올림픽에서 양궁 3관왕을 달성한 안산 선수를 둘러싼 페미니즘 논란이 여성과 남성의 대결 양상으로 변질되면서다.

특히 여야 정치권이 젠더 갈등을 악용·방관하고, 되레 갈등을 부추겨 정치 논쟁으로 이용하는 모양새다.

젠더 갈등을 풀어야 할 정치권에서 오히려 전면적으로 선거 이슈에 이용한다면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사건의 발단 
양궁대표팀 안산 선수가 연거푸 금메달을 따며 언론의 주목을 받자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때 아닌 페미니즘 논란이 일었다.

선수의 숏컷 머리 모양을 놓고 '페미니스트'라는 추측성 글이 올라왔고, 선수를 향한 사이버 테러가 이어졌다. 

실제 안산 선수 관련 기사에는 "숏컷에 여대, 광주출신까지 페미니스트가 확실하다"는 식의 공격성 댓글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여기에 국민의힘 대변인이 선수에 대한 도 넘은 공격에 대해 "논란의 핵심은 '남혐 용어 사용'에 있고, 래디컬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이라고 주장했다.

사이버 폭력 피해자인 선수가 폭행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 이러한 페미 몰이 공격은 결국 정치권 공방으로 번졌다. 

▲ 전북에서도 '페미몰이'  
"너 페미야?"라는 질문은 비단 안산 선수에게만 날아드는 것은 아니다. 

페미니스트에 대한 사상 검증은 전북 지역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일상화돼 있다. 

전북대학교 에브리타임(이하 에타)에서는 '페미니즘 발언'을 하거나, 관련 활동을 하는 여학생들의 사진이나 신상을 올려놓고 '쿵쾅쿵쾅'이라고 조롱하는 글을 목격할 수 있다. 

전북대 학생 A씨도 최근 '페미몰이'를 당하면서 마음고생을 했다고 털어놨다. 

교양수업 시간에 '남녀평등복무제와 모병제 전환'에 대해 자유토론 시간이 주어졌고, A씨는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발표했다.

그러던 중 함께 수업을 듣는 한 남학생과 설전을 벌이게 됐다.

토론이 끝날 때 쯤 A씨는 남학생에게 대뜸 “혹시 페미세요?”라고 질문을 받았다. 

A씨는 토론 주제에서 벗어난 내용이라는 생각에 대답하지 않았으나, 수업 직후 에타에 자신의 사진과 나이 학과 등 신상이 적힌 글이 올라왔다. 

A씨는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던져준 주제에 대한 발표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모든 게 사상문제, 젠더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고 말했다.

▲해결 방안은 없을까?
젠더 갈등이 사회 전방위로 퍼지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취업난과 같은 사회 구조적 문제를 젠더 이슈로 덮으려는 정치권이 빚어낸 비극이라고 진단한다. 

정미경 전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경쟁이 치열해진 구조적 불평등 속에서 20대 남성들이 힘듦과 불만을 쏟을 대상이 필요했고, 그게 여성이었을 것”이라며 “이러한 불안과 분노를 정치권이 이용해서 갈등에 기름을 붓고 있다”고 꼬집었다. 

지역에서 페미니즘 활동가로 활동중인 한솔(26)씨는 “청년들 사이에서 페미 공격은 너무 익숙한 소재가 돼버렸다”며 “젠더갈등을 좁히고 ‘혐오’의 분위기를 없애려면 결국 정치로 풀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여가부 폐지에 대해 무조건 반대, 무조건 찬성이 아닌 각자가 가진 생각을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는 것. 

한솔씨는 “지역이든 수도권이든 결국은 페미니즘에 대한 기세를 바꿔나가는 게 중요하다”며 “취업난 등 사회 구조적 문제에서 촉발된 분노가 뜬금없이 젠더 갈등으로 옮겨가고 있어 안타깝다. 젠더갈등을 정치적 이슈로 이용하는데 집중하지 말고, 정치권이 먼저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으면 좋겠다”고 했다./박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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