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군 고산면에 위치한 ‘림보책방’은 고산터미널 근처 시장 건물 2층에 있다. 익숙한 시장 가게 사이 좁은 나무계단을 올라가면 정말 거짓말처럼 예쁜 파란 문이 나온다. 마치 해리포터에서 9와 3/4 플랫폼을 통과한 기분이다. 오른편 벽에는 작고 반짝이는 간판이 두 개가 나란히 붙어있다. ‘림보책방’, 그리고 ‘플래닛 완주 ‘플래닛 완주’는 완주군에서 조성한 청년공간으로 삼례에 처음 문을 열었으며 이후 고산과 이서에 2호점과 3호점을 냈다.

림보책방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늘 유쾌하게 인사하는 책방지기를 만날 수 있다. 바로 림보책방 대표 홍미진씨다. 홍미진은 사람들에게 이름보다 주로 ‘통통’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2019년 고산시장에 문을 연 ‘림보책방’은 완주군에서 조성한 청년공간인 ‘플래닛 완주’(완주군에서 조성한 청년공간으로 삼례에 처음 문을 열었으며 이후 고산과 이서에 2호점과 3호점을 냈다.)의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 2018년 완주군이 고산에 청년공간을 조성하려고 본격적으로 준비를 하던 시기에 귀촌 후 책방을 열기 위해 공간을 물색하던 ‘통통’(홍미진)과 청년공간 매니저로 일하기로 했던 ‘메이’(윤지은)가 만나게 됐고, 같이 운영하기로 결정한 후 두 사람은 이곳을 함께 준비해서 문을 열게 됐다.

그런데 왜 하필 책방이었을까. 그것도 도시도 아닌 농촌의 시장 한복판에서. 그 이유는 어릴 적부터 책을 사랑하던 통통의 꿈에서 출발했다. 친구들과 장사하는 놀이를 하면 꼭 책장사 놀이를 할 정도로 책을 좋아하던 꼬마는 커서 출판사에 들어갔다. 그러다가 책을 만드는 것도 좋지만 어린 시절 농촌에서의 경험이 자신을 풍부하게 만들고 행복하게 한다고 생각한 꼬마가  서른이 되던 해, 돌연 귀촌을 선택했다. 언제까지나 도시에서 살기보다는 마음 한편으로 늘 귀촌을 꿈꾸던 그였기에 어차피 귀촌을 할 거라면 차라리 기력이 좋을 때 뭐라도 해보자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귀촌을 해서도 여전히 책과 함께 하고 싶었던 그는 고민 끝에 책방을 준비하게 됐다. 사람들이 책이 미치는 좋은 영향을 경험할 수 있게 하고 싶었고, 30대에는 그런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문득 책방을 준비하던 시기, 통통에게 ‘림보책방’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던 때가 생각났다.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림보’를 떠올리긴 했으나 그게 진짜 책방 이름이라고는 믿기지 않아서 재차 확인을 해야 했다. “정말 내가 생각하는 그 림보가 맞아? 지옥 비슷한 거? 그냥 허들 같은 게 아니고?” 그 말을 듣고 통통은 특유의 ‘솔’ 톤의 목소리로 깔깔깔 웃으며 대답했다. “맞아요, 오짱이 생각하는 거. 근데 중간지대라는 말이기도 해요. 뭐 비슷하죠. 연옥이나 중간지대나.”

림보는 라틴어로 경계, 중간지대를 뜻하는 단어다. 이렇게 책방의 이름이 된 ‘림보’ 에는 청년공간과 책방을 준비하며 가졌던 통통의 소망이 고스란히 담겼고, 이는 자연스럽게 책방과 공간운영의 정체성으로 이어졌다. 경계를 넘어 누구나 자유롭게 모일 수 있는, 모두에게 열린 꿈의 공간. 그래서 림보는 청년공간이자 마을공간이며, 다양한 문화의 중간지대가 됐다. 집에 갈 때 들려 공유책장의 책을 읽고 가는 초등학교 단골부터 이곳이 있어 이제는 전주보다 고산이 재미있다는 청년들, 조용한 자기만의 시간이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을 주민들까지. 사람들은 이곳에서 모여 책을 읽고, 함께 영화를 보고, 뜨개질과 기타연습을 한다.

그렇다고 림보가 마냥 제한이 없는 자유지대인 것은 아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공간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서로 지켜야 할 것들이 있는 법. 림보에도 세 가지 공간운영원칙이 있다. 바로 ‘공공성’과 ‘자율성’, 그리고 ‘환대’다. 책방이 공유하고 있는 공간이 세금으로 운영되는 청년공간인 만큼, 통통은 림보를 이용하는 사람들과 함께 이곳이 지역의 자산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 늘 노력한다. 또한 모두의 공간으로서 함께 운영한다는 점, 그리고 열린공간으로서 환대에 대한 생각은 림보책방의 이용안내에도 고스란히 담겨졌다.

림보는 공간 자체로 매력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또 하나의 큰 매력이 있다. 바로 림보에서 요일별로 저녁마다 열리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소모임이다. 림보에서 열리는 프로그램과 소모임은 매월 소자보와 블로그를 통해 알리고 있는데, 최근에는 인스타그램에도 올려달라는 사람들의 요청으로 림보책방 인스타그램을 시작하기도 했다. 림보의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하나하나 뜯어보면 다 해보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에니어그램, 댄스연습, 원서읽기, 페미니즘, 바느질부터 벼농사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프로그램과 소모임이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다. 어떻게 이곳에서 이런 프로그램이 다 가능한 것일까. 이는 지역상황에 맞게, 함께 하고 싶은 사람 세 명만 모이면 프로그램을 개설할 수 있는 림보의 획기적인 시스템 덕분이기도 했다. 책방지기인 통통이 좋아하는 것을 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열어주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프로그램과 소모임의 기획부터 추진, 마무리까지 책방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요. 독서모임을 하고 싶으면 주변사람들과 연락해서 ‘맞춤형’으로 진행할 수 있는 거죠. 그러니까 더 참여율도 높아요. 무엇보다 참여한 사람들끼리 자주 연락하며 정이 쌓여서 좋아요.”

하지만 이런 모습이 멋져 보여도 실제 운영을 하는 입장에서는 힘들 법도 한데, 림보를 방문할 때마다 통통은 언제나 발랄하게 인사를 건넨다. 사실 오후 7시만 넘어도 여는 가게가 별로 없는 고산에서 사람들이 저녁 늦게까지 프로그램과 소모임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운영한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책방에 출근해서 퇴근할 때 늘 ‘놀이를 하는 아이의 기분’을 안고 간다고 하는 모습에서는 늘 행복이 묻어나오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완주군에서 운영하는 청년공간을 운영하며 공간을 공유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책방을 통한 운영의 자립을 늘 염두에 두고 있다.

최근에는 귀농귀촌, 청년공간 등과 관련해서 다른 지역에서 림보책방을 보러 찾아오는 방문객들이 늘어나기도 했다. 통통은 현재 함께 책방을 운영하는 메이, 설레와 함께 이런 관심이 고맙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찾아오는 외부 방문객이 혹시라도 책방을 이용하는 청년들과 주민들에게 불편함으로 다가오지 않도록 늘 신경 쓰고 있다.

“림보는 책방이긴 하지만 동시에 사랑방 같은 곳이니까요. 앞으로도 림보책방에 오는 지역청년들과 주민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매일매일 준비할 거예요.”

꿈과 용기의 공유지대 ‘림보책방’. 앞으로도 자신의 행복을 찾고 청년들과 주민들을 위한 통통과 책방지기들의 즐거운 실험이 계속되기를 응원하고 기대한다.
/글·사진=오민정 시민기자(완주문화도시지원센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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