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식

로또복권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전국적으로 로또 열풍이 불었다. 평생 수억을 벌기도 힘든데 1등 당첨금이 수십억 원이나 되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하루를 벌어 하루를 사는 저소득층에게는 신분상승을 할 수 있는 신기루와 같은 것이었다. 로또복권 금액과 당첨자의 꿈 이야기가 주요 대화 내용일 정도였다.

그때 나도 매주 로또복권을 샀다. 복권을 산 순간부터 추첨일까지는 마냥 기대에 부풀어 즐거웠다. 직장에서는 동료 직원들과 매주 이천 원씩 돈을 내어 로또계를 하기도 했다. 가끔 로또 번호 6자리 중 3자리를 맞춘 5등에 당첨되기도 했지만 대부분 손해를 봤다. 만약 그 주에 1등 당첨자가 없을 때는 당첨금을 이월시키는데, 몇 주 동안 이월되면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이 되었다.

그 주는 몇 주 동안 당첨자가 없어 이월된 1등 당첨금이 백억이 넘었다. 당첨 금액이 톱뉴스로 나올 정도로 국민의 관심사였다. 우리 부부 역시 백억의 당첨금 이야기를 나눈 뒤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난 아내는 지난밤 꿈 이야기를 했다. 당시 장인어른이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내가 가끔씩 장인어른 생각에 울적해 할 때였다. 아내의 꿈에 돌아가신 장인어른이 수십 마리 돼지를 몰고 왔는데, 가장 큰 돼지가 아내에게 숫자를 일러주더라는 것이다. 아내는 분명 복권에 당첨되는 꿈이라며 로또를 사자는 것이었다. 당연히 나도 아내의 말에 동의했다. 아내의 꿈에 장인어른과 함께 나타난 돼지가 일러주는 번호는 3개의 숫자였다. 아내와 나는 3개의 숫자를 놓고 가족 나이와 생년월일을 조합하여 수십 개의 번호를 만들었다.

다음날 우리는 가까운 복권 판매점에 가서 복권을 샀다. 꽤 많은 금액을 투자했다. 수십 개의 로또번호에 안심하지 않고 혹시 빠져 있는 번호를 확인하는 등 실수하지 않도록 신경도 썼다. 당첨금을 어떻게 할 것인가 아내와 상의도 했다. 사무실에서도 시간만 나면 백지에 백억 원의 당첨금을 적어놓고 어떻게 할 것인가 계획을 세워보곤 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외국으로 1년 정도 나갔다가 다른 사람들이 잊어버릴 때쯤 들어와 사업을 한번 해볼까. 은행에 저축해 두고 없는 척하고 살까. 큰 섬을 하나 사서 그곳에서 살아 볼까. 당첨금을 어떻게 사용할 지 생각하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그 순간만큼은 맞벌이로 부유하게 사는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복권 추첨일이 되었다. 아이들에게 얘기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추첨 시간이 되자 온 가족이 모였다. 첫 번호가 나왔다. 환호성을 질렀다. 아내가 꿈에서 본 번호였다. 백억 원의 복권 당첨금이 우리 것이 된 것처럼 아파트가 떠나갈 듯 큰소리로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그게 끝이었다. 그 뒤부터는 아내가 꿈에서 본 숫자는 나오지 않았다. 수십 장의 복권 중에 당첨된 것은 자동으로 신청한 것 중에서 하나만 3자리를 맞추었다. 매우 실망했다. 괜히 개꿈 꾸어서……. 하며 아내에게 비아냥거렸다.

사실 모두가 아내 탓만은 아니다. 나 역시 거액의 당첨금에 현혹되어 아내의 꿈 이야기를 하지 않았더라도 많은 복권을 샀을 것이다. 아내는 그 뒤부터 복권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지금도 로또 판매점 근처를 지날 때면 가끔씩 그때 기억이 나 웃곤 한다.

만약 요행으로 큰 금액의 복권이 당첨되었다면 지금의 아내와 나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 지금쯤은 큰 재력을 믿고 타락의 길로 빠져들었을지도 모른다. 작은 기쁨에도 행복해하는 우리 부부의 모습도 그 재력이 빼앗아 갔을지도 모른다. 돈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정당한 노력의 대가로 행복을 맛보는 것이 아닐까. 지금 생각해 보니 아내의 꿈은 요행을 바라지 말고 열심히 노력해서 살아가라는 장인어른의 가르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