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용문

오피니언l승인2021.06.10l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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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식

등용문이라고 말이 있다. 힘든 과정을 이겨내고 출세의 관문에 들어섰다는 뜻으로 후한서(後漢書) 이응전(李膺傳)에 나오는 말이다. 황하강 상류에 물살이 매우 빠른 용문이라는 폭포가 있었는데 수많은 물고기가 입구까지는 갔지만 폭포를 통과하지 못했다. 폭포를 오르기가 너무 힘들어 만약 오르기만 하면 물고기가 용이 된다고 하여 이 말이 생겼다. 등용문이란 말을 보며 요즘 만만찮은 청년들의 취업난이 생각난다. 몇 년째 취업을 준비하는 둘째 아이를 보면서 용문의 폭포를 오르는 물고기가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느끼고 있다.

오늘은 둘째 아이 서류전형 발표일이다. 지난달 원하는 회사에 지원했는데 역시 경쟁률이 높다. 아마 모집인원의 백 배수는 지원했을 것이다. 채용인원의 10배수 정도만 시험 볼 기회를 주니 서류전형 경쟁률만 10대 1 이상이다. 발표 시간이 오후 세 시인데, 시간이 가까워져 오자 마음이 초조해진다. 이번만큼은 시험이라고 볼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며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세시가 조금 지나서 전화기를 들었다. 아이에게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내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아내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서류전형에서 계속 떨어지는 당사자가 훨씬 힘들다며 지켜보는 여유 좀 가지라는 것이다. 만약 통과되었다면 본인이 바로 연락할 테니 모른 척하고 기다리라는 것이다. 아내의 말이 맞다. 아무리 내가 조급증을 내며 답답하더라도 본인의 힘든 마음의 반이라도 될까.

둘째 아이는 대학 졸업 후 취업 준비 중이다. 3년 전부터 입사를 위해 공공기관에 입사원서를 넣는데, 대부분 서류전형에서 떨어졌다. 준비했던 실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없었다. 올해는 영어성적도 올렸고, 학교 성적도 제법 괜찮으니 몇 번은 서류전형에 통과될 것으로 믿었는데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난주 아이는 입사 시험을 쳤다. 올해 십 여 곳을 지원했는데 입사 시험을 본 것이 세 번째이다. 서류전형 없이 시험 기회를 주는 회사에서 보았다. 이번 시험에 서너 개 정도 틀려서 시험을 잘 보았다고 하는데 아이는 기대하지 말라고 한다. 경쟁률이 높고 문제가 쉬워서 만점이 아니면 합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올해는 코로나 19로 경제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취업문이 더욱 좁아졌다. 특히 문과생이 어렵다고 한다. 대기업조차 신입사원 채용을 줄이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서류전형에 떨어져도 아빠 괜찮아 다음에 하면 된다며 웃던 아이는, 요즘은 입사서류를 접수한 사실조차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늘 서류전형 결과를 기다리는 회사는 특별하다. 둘째 아이는 그 회사에 입사를 위해 몇 년 전부터 준비했다. 회사 입사에 맞는 대학 편입까지 했고, 다른 회사 입사시험에는 같은 과목을 선택하여 시험을 치는 등 차근차근 준비해 왔었다. 며칠 전에는 모의고사에서 봤는데, 80점 이상 나왔다며 시험만 치게 되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네 시가 지날 무렵 카톡이 왔다. 둘째 아이였다. ‘아빠 나 서류전형 떨어졌어. 어떻게. 나 술 마시러 갈 거야.’ 걱정했던 그대로였다. 아이의 문자에 가슴이 울컥했다. 몇 년 동안 준비했는데 아이가 안타까웠다. 아이에게 문자를 넣었다. ‘실망하지 말고 마음 편하게 먹어. 며칠 동안 독서실 가지 말고 친구들하고 놀아.’

황하강 상류의 물고기들도 용문을 오르는 물고기를 생각해보자. 단번에 올라가지 않았을 것이다. 폭포 아래서 물살을 가르는 힘을 기르는 노력을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홍수로 많은 물이 내려오는 날이 오던지, 아니면 비축한 힘이 강해져서 물살을 가르는 힘이 생겨서 용문을 올랐을 것이다.

오늘도 독서실에서 취업준비 중인 아이에게 힘을 주고 싶다. 조급해하지 말고 찬찬히 준비하면 언젠가는 좋은 결과가 올 것이라고. 힘들게 얻은 결과가 더욱 소중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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